실향민 화가 이동표(75)는 고향 황해도 해주와 분단을 소재로 평생 그림을 그려왔다. 하지만 지금 하는 개인전 ‘실향 57년, 원한의 세월’(26일까지 조선일보 미술관·02-724-6328)만큼 처절하게 그린 적은 없었다.
아기 업은 엄마가 철조망을 잡아 뜯으며 절규하는 그림 옆에 ‘내 인생을 갈갈이 찢어 놓은 저주의 철조망’이라 씌어 있다. 앙상한 어느 실향민의 해골 위에는 ‘유언: 나 죽으면 고향 아버지 곁에 묻어달라’고 적어 놓았다. 총부리를 겨눠도 아랑곳 않고 철조망을 붙들며 늘어지는 한 실향민의 머리 위엔 어린 시절 엄마의 모습이 환영으로 그려져 있다. 무채색의 무거운 톤에 거친 질감으로 그린 이런 작품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질 정도다.
이 전시는 황해도 중앙도민회가 주최를 했고, 관객 중엔 실향민 등 전쟁 세대가 많다. 6·25전쟁 발발일을 앞두고 열린 전시다.
이동표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예쁜 해주행 기차를 타고 고향에 가는 모습처럼 희망이 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때만 해도 언젠가는 고향에 꼭 가볼 것이라 생각했지요. 이젠 불가능한 것 같아요. 그동안 꾹 참고 있던 소재를 지난 2~3년 동안 정신 없이 그렸어요.”
얼어붙은 땅 위에서 죽어 가는 피란민들, 한밤에 큰 화재가 나 아비규환이던 평양 형무소, 흥남부두에서 수송선을 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 미술평론가 이구열씨는 이 그림들을 가리켜 “가슴 깊이 쌓여 굳어진 원한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이동표는 해주예술학교 2학년이던 1950년 6·25전쟁이 나면서 인민군으로 징집돼 가족과 헤어졌다. “남쪽으로 왔던 작은 누나는 KBS 이산가족 찾기 때 만났는데, 나머지 가족인 큰 누나, 두 남동생, 부모는 영영 보지 못했어요.” 그는 “앞으로는 실향민들이 하늘나라에서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