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퀴즈쇼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탈락할 때에도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안도하였던 것일까? 이춘성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죠. 진짜 죽는 것은 아니죠. 그들은 다시 부활합니다. 부활한 참가자들은 멋쩍게 웃으면서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는 식으로 말들을 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결코 잊지 않습니다. 그들이 문제를 맞히지 못했을 때의 끔찍한 표정 말입니다. 부끄러움과 절박함이 뒤섞인, 어떻게든 이 문제를 맞히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평소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던 얼굴의 근육을 다 써 가면서 재깍거리는 초침 소리와 싸울 때의 표정을 말입니다.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엔 마치 임사체험을 한 등반가들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 가족들의 모습, 즐거웠던 기억과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순간 모든 것을 초탈하게 됩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꽉 붙들고 있던 정신의 손을 놓아버립니다. 저 아래로 떨어지는 거지요. 그래도 잘했어. 여기까지 온 게 어디야. 최선을 다했으니 만족해. 이런 생각들이 지나가면서 뇌를 이완시킵니다. 최고조로 치닫던 긴장을 한순간에 누그러뜨리는 인체의 신비랄까요. 혹시 추락을 경험한 등반가들에 대한 책을 읽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라인홀트 매스너 같은 사람 말씀하시는 거예요?”
“맞습니다. 읽어보셨군요.”
“아니요. 그냥 이름만… ….”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별로 개의치 않고 자기 할 말만 계속했다.
“극도의 긴장 뒤에 찾아오는 편안한 순간. 그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을 위해 신이 예비해놓은 마지막 축복입니다. 도파민이 분수처럼 뇌를 적시며 고통을 줄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추락이 가장 편안한 죽음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신을 믿으세요?”
“말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일종의 수사지요. 퀴즈가 그렇게 신성한 거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도 한참을 떠들다 보니 목이 말랐는지 얼음 녹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나는 궁금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얘기를 나에게 떠들고 있단 말인가? 퀴즈의 전도사인가?
“아까 이민수씨가, 퀴즈는 운이라고 말씀하셨죠?”
깍듯한 태도는 여전했다. 그러면서도 앞에 앉은 사람으로 하여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네.”
“그렇죠. 얼마간은 운입니다. 100미터 달리기에 나가는 선수는 자기가 달려야 할 거리가 100미터라는 것을 압니다. 거리가 갑자기 달라지거나 장애물이 튀어나오지는 않습니다. 육상은 ‘인디아나 존스’가 아니니까요. 하하하.”
이춘성은 자신의 썰렁한 유머에 스스로 도취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색을 했다.
“운이야말로 문제적입니다. 운이 끼어들어야 비로소 그 모든 것에서 죽음의 냄새가 풍기게 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람들은 공정하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척하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축구를 보세요. 승부차기 같은 것은 완전히 운 아닙니까? 골키퍼는 앞에 서 있는 키커가 아니라 운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겁니다. 심판운, 대진운, 모든 게 운이죠. 사람들이 왜 사격이나 투포환 같은 기록경기보다 축구를 좋아하겠습니까? 져도 승복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 이번에는 운이 나빴어. 이렇게 푸념을 하겠지요. 이기면? 운명의 신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력이 좋아서 이겼다는 얘기보다 하늘이 우리 편이었다는 게 훨씬 근사하지 않습니까?”
“저는 실력이 좋아서 이겼다는 소리가 더 듣기 좋던데요.”
그가 빙긋이 웃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운에 좌우되는 스포츠, 예를 들면 축구나 야구를 역도보다 좋아할까요? 야구야말로 운에 좌우되는 스포츠 아니겠습니까? 바람의 방향과 세기, 불규칙 바운드, 펜스의 거리, 심판의 성향 같은… ….”
그는 오른손으로 펜스를 향해 날아가는 홈런볼의 궤적을 그려 보였다.
“그렇죠. 운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포츠죠, 야구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