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강신일은“‘검은 집’은 닫힌 마음을 뜻하는 것 같다”며“영화‘검은 집’에는 인간의 마음을 닫은 사람과 인간적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 간의 극과 극의 대립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오종찬 객원기자 ojc1979@chosun.com

“목 매달려 있는 것을 자네가 똑똑히 봤잖아…. 돈을 줘…. 돈을 줘야 해….”

밑바닥부터 치미는 금속성의 쉰 목소리는 이 남자의 충혈된 눈빛과 결합돼 있다. 그가 잘근잘근 씹어대는 건 손장갑. 곧 자해라도 할 듯한 기세에 관객들은 어느 새 숨을 죽인다. 자신의 의붓아들이 자살한 모습을 보고도 태연했던 그. 보험회사 심사원 전준오(황정민)의 눈에 그는 보험금 3000만원을 노린 살해범으로 비칠 뿐이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검은 집’에서 핏빛 살육의 무대로 주인공 전준오를 이끌고 가는 인물은 바로 이 사람, 박충배 역의 강신일(47)이다. 이 영화는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못하는 ‘사이코 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소재로 한 작품. 평범한 사람이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그렸다. 1997년 일본 호러 소설 대상을 차지한 기시 유스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영화 속 ‘공포’의 장치는 약하지만 대신 ‘스릴러 드라마’의 분위기는 잘 드러난 편이다.

강신일은 이 영화에서 다른 배우를 압도하는 파괴력으로 스크린을 지배한다.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분열된 눈빛은 주인공 전준오 앞에선 너무나도 냉정하고 자신만만하게 변한다. 자칫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읽혀버릴 수 있는 이 영화에서 그는 좀 더 현실적인 고통을 은유하는 절충적인 장치가 된다.

그의 탄탄한 연기는 연극 무대를 통해 다져졌다. 1986년 극단 연우무대에 들어가 본격적인 연극배우의 길을 걸으면서 ‘칠수와 만수’, ‘김치국씨 환장하다’, ‘덕혜옹주’ 등 20여년간 30여편의 연극을 소화했다. 김민기씨와 ‘학전 소극장’을 만들기도 했다. 1999년 ‘이재수의 난’으로 처음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은 뒤 ‘공공의 적’, ‘실미도’, ‘한반도’ 등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쳤다.

‘검은 집’에서 함께 연기한 황정민은 그를 두고 “발성, 발음 등 연기 교본 같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이랬다. “나는 왜 이리 연기를 못할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요즘 (송)강호나 (황)정민, (정)재영 같이 좋은 후배들을 보면, 내가 저 나이에 저런 역할을 과연 해낼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만 들죠.”

“사심(私心)이 생겨서 그런가 봐요.” 처음 연기하던 자세가 마모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때는 돈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고, 연극에 대한 가치관도 확고했고, 자신감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알아보는 일도 잦아지고, 돈에도 눈이 뜨이고….” 하지만 그에게서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다. 버스 토큰 살 돈도 없어 신촌에서 강남까지 걸어다니기도 했다는 말이 이렇게 진실하게 느껴진 적도 없다.

이번 작품에서 원래 들어온 역할은 전준오의 직장 상사. 시나리오를 읽고 박충배 역이 너무 탐이 나 “내가 하면 안 되겠냐”고 감독에게 물었다고 한다. “주로 직장 상사만 했잖아요. 이걸 또 하기엔 재미 없는 것 같고…. 남들이 배우 강신일에 대해 알고 있는 이미지와 다른 모습에 욕심이 난 거죠. 이것도 사심이네요.” 그에게 ‘사심’이란 보통 사람들의 용어와는 뜻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예전 한 선배가 ‘우리에게도 수도승 같은 배우가 있다면’이란 제목의 글로 그를 평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굳은 심지를 칭찬한 것 같은데, “갑갑해 보이잖아요”라고 되받아친다. “제가 말을 잘 못하잖아요. 재미도 없고, 지루하고…. 안 웃으면 화난 것 같다는 사람도 있고. 게다가 저 자신에게 굉장히 야박하고 혹독하게 대하는 편이거든요. 연기가 ‘도(道)’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어쩌면 연기하면서 저를 갈고닦고 있는지도…. 그럼 수도승이 맞나?”

그는 “연기를 잘하는 건 나 혼자 잘해서가 아니라, ‘나’와 ‘너’가 제대로 소통돼야 잘 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예전에 쇼 프로그램에서 “영화 ‘아는 여자’를 본 뒤 이나영이 참 좋은 배우라고 느꼈다. 함께 멜로를 찍어보고 싶다”고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니, 제가 감히 어떻게 그렇게 어린 배우랑…. 그냥 분위기 띄워보려 한 말인데…. 그런 배역이 들어오지도 않겠지만요. 그래도 기회가 주어지면 좋죠. 코미디 같은 것도 해보고 싶고. 기왕이면 로맨틱 코미디가 좋겠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