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철 출판팀장

“여보, 된장국 2인분 끓이려면 물 두 사발 부으면 될까? 된장은 큰 스푼 하나면 되겠지?” 여든 셋 사하시 씨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섰습니다. 폐암에 걸린 할머니는 혼자 남을 남편 생각에 마음이 급합니다. “죽은 쌀을 한 시간 정도 담갔다가 하세요. 쌀 하나에 물 3의 비율로 약한 불에 천천히 끓이세요.” 집안 일을 하나둘씩 가르쳐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두고 저 세상으로 가버립니다. 사하시 씨는 당장 끼니를 때울 일부터 아득합니다. 딸 넷에 아들 하나를 뒀지만, 저마다 사정이 있어 아버지를 모실 형편이 안됩니다. 생각다 못한 50대의 셋째 딸은 아버지에게 ‘홀로서기’를 훈련시킵니다. 8절지 종이에 붓으로 이렇게 생활 수칙을 적어놓구요. ‘기상� 옷갈아입고 침대정리…� 취침 전에 부엌, 목욕탕 가스잠그기� 온수 보일러 끄기’

‘아버지의 부엌’(지향)은 혼자 남겨진 아버지의 생존기입니다. 도쿄에서 컨설팅회사를 운영하는 딸은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일주일간 나고야의 아버지와 지내며 혹독하게 몰아부칩니다. “설거지는 그때그때 꼭 하세요. 미루면 점점 더 싫어져요.” “저녁 반찬은 두세가지는 있어야 해요. 나물은 야채를 데쳐서 깨나 비지, 김으로 무쳐요. 한번 식사에 재료를 10가지 이상 써야 영양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딸이 ‘악바리 조교’같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동네에서 장보기, 밥짓기, 세탁을 거뜬히 해내며 홀로 살아남는데 성공합니다. 노인회에 나가 친구들까지 사귀면서요. 그래도 섭섭한 건 있습니다. 어느 날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누가 와줘도 왔을 때는 기쁘지만 돌아갈 때가 되면 쓸쓸함이 고여 올라 눈물이 살짝 나온다. 문밖까지 바래다주고 손 흔들때가 제일 쓸쓸하다.’

이 책은 앞서 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20여 년 전 출간돼 화제를 모았습니다. 생활에 서툰, 나이 든 남자의 처지가 남의 얘기 같지 않게 읽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년 전 소개됐으나 주목을 받지 못하다 올초 다시 나왔습니다. ‘홀로서기’가 필요한 노인들이 늘어서일까요? 그러고 보니 요즘 노년에 관한 책이 유독 눈에 많이 띕니다. 독일 정치인이 쓴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후’(휴먼 비즈니스), ‘늙는다는 것의 의미’(종합출판),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소설가 시몬 드 보바르의 ‘노년’…. ‘평균 수명 80세’ 시대를 눈 앞에 둔 우리 사회에 보내는 신호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