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 뉴욕특파원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의 요즘 고민 가운데 하나는 빈부 격차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각종 보호주의정책과 근로자·빈곤층 대책을 주장하자 이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과 작은 정부,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해 왔다. 빈부 격차가 다소 발생하더라도 경제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우는 데 더 중점을 두어 왔다. 하지만 폴슨 장관도 미국의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통계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의회 예산국의 보고서를 보면 2004년 미국 하위 20% 가구(5분위)의 실질소득은 지난 1979년보다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 위의 20%(4분위) 소득은 11%, 3분위 소득은 15%, 2분위 소득은 23% 늘었다. 반면 최상층인 1분위 소득은 63%나 증가했다. 신문에는 연일 수퍼 부자들의 고소득 뉴스가 등장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헤지펀드 매니저인 제임스 사이먼스는 1년간 일한 대가로 무려 17억달러(약 1조6000억원)를 손에 쥐었다. 한국 같으면 부자들의 치부 과정을 색안경 끼고 보고 정부가 소득세를 대폭 거둬 빈곤층에 나눠줘야 한다는 과격한 논리가 나왔을 법하다.

하지만 미국의 분위기는 그리 과격하지 않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급진주의 논리를 뒷받침할 증거가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매니저나 실리콘 밸리의 벤처기업가들이 벼락 부자가 됐어도 빈곤층의 실질임금은 줄지 않았다. 중하층은 의료·교육 혜택을 여전히 누리고 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파이를 키우는 데 기여했으나 파이 증가분이 저소득층에 좀 적게 돌아갔다는 인식이다. 결국 폴슨 장관 등 미국 경제 전문가들의 고민의 초점은 이렇게 정리된다. ‘미국 경제 번영의 정신을 죽이지 않는 범위에서 어떻게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요즘 빈부 격차 확대의 원인은 1970년대의 경제적 실정(失政)이다. 192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의 복지정책 이후 미국의 빈부 격차는 50년 동안 축소돼 왔다. 하지만 1970년대 포드·카터 대통령 시절 미국 경제에서 가장 평등주의 목소리가 높았던 이 시기에 경제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이후 레이건 대통령이 혁신적인 규제 완화와 세금 인하, 강경한 대(對)노조 전략을 통해 미국 경제를 되살려 놓은 부수효과로 지난 20여년 동안 부자가 점점 부자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오해해선 안 된다. 미국인들은 레이건을 경제를 살려놓은 영웅으로 칭송하지 빈부 격차의 주범으로 비난하지는 않는다.

미국인들은 빈부 격차의 해법을 상류층이 아니라 오랫동안 계층 상승에 실패한 하위층에서 찾는다. 프린스턴대 앨런 크루거 교수는 “상류층을 쥐어짜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위층의 소득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해결책은 일자리와 교육으로 돌아간다. 기술이 없는 저소득층은 임금 상승 보다는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소득을 늘린다. 그래서 투잡스, 스리잡스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일자리가 필요하다. 저소득층 자녀들이 고숙련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교사를 더 채용하고 장학금을 지급하는 배려도 필요하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비용이 들지만 다른 현실적 대안은 없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세계 최대 강대국이 실정(失政)에 따른 고실업과 저성장, 빈부 격차를 치료하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