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경주 불국사. 머리칼 희끗한 중년 사내 60여명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일반 관광객들 눈길마저 붙든 이 ‘대부대’는 1977년 고교 입학 30년 만에 ‘추억의 수학여행’을 온 청주고 53회 동기 동창생들이었다.
“야 불국사는 옛날 그대로네….”
“너 기억나냐? 그때 이 돌계단에 올라가서 사진 찍다가 넘어졌었잖아….”
이들은 까까머리에 교복 입고 찾아왔던 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했다. 이 특별한 ‘수학여행’은 지난해 말 열린 동창회 모임에서 몇몇 회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회원들은 1인당 10만원의 회비를 걷었다. 그리곤 6월 9~10일 1박2일 코스로 경남 진주와 부산 해운대, 경북 경주를 둘러보는 수학여행을 결정했다. 동창생들은 지금은 서울 청주 부산 등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30년 만의 반가운 연락에 호응이 이어졌다. 여행에 참가한 인원은 전체 졸업생 480여명의 12%에 불과했지만 동창회장 심규헌(47·한의사)씨는 “그 바쁜 주말에 많은 친구들이 참가해줘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가족과 주말여행 계획을 미루고 온 친구도 있고, 산처럼 쌓인 업무도 미루고 달려온 동문도 있었다. “예전처럼 가슴이 설레 아침잠을 설쳤다”는 사람이 많았다.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어 머리칼엔 희끗희끗 서리가 내리고 더러는 앞이마가 훤히 드러난 ‘아저씨’가 됐지만, 한자리에 모인 동창생들은 사춘기 소년으로 돌아갔다. 여행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동문들은 고교시절 수학여행 때 찍은 사진을 꺼내 나눠보며 껄껄 웃었다.
“야! 요 뒤에 있는 녀석 좀 봐라. 얘는 그때 만날 여학생만 열심히 쫓아다니지 않았냐?”
“난 그때 경주 수학여행 가는 관광버스에서 안내양 누나가 너무 예뻐서 좀 가슴이 두근거렸지. 하하.”
이들은 고교 때처럼 부산 해운대에 여장을 풀었다. 한 방에 10여명이 ‘칼잠’을 자던 그때의 초라한 여관방에 비하면 훨씬 쾌적한 콘도미니엄을 구했다. 가슴에 명찰까지 단 중년의 사내들은 옛날처럼 로비에 줄을 선 채 1~8반까지 반별로 방을 배정 받았다. 밤엔 잠잘 생각도 잊은 채 어린이처럼 바닷가에서 폭죽놀이도 했다. 동문 중엔 불교문화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도 있어 경주 불국사에 갔을 땐 즉석 안내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공식 여행일정을 모두 마치고 10일 오후 6시 청주시내 입구에서 서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던 동문들 중에는 눈시울이 붉어진 사람도 보였다. 이진우(47·회사원) 동문회 총무는 “수학여행 30주년을 맞는 내년에 이런 여행을 한번 더 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