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실리게 될 자신의 기사를 재미있게 읽어달라는 앙리의 친필 메시지와 사인.

2005~2006시즌을 포함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4번이나 차지한 프랑스 출신의 ‘골잡이’ 티에리 앙리(30·아스날)가 한국을 다녀갔다.

앙리는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스포츠 브랜드 리복의 축구화 ‘스프린트핏(Sprintfit)’ 홍보를 위해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4일까지 한국을 방문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이후 5년만의 방한이었다. 코엑스 인터컨티넨탈서울 호텔에서 앙리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앙리는 한국과 묘한 인연이 있다. 그는 지난 1997년 말레이시아 세계청소년(20세 이하)선수권에서 프랑스의 우승을 이끌며 주목 받았다. 당시 앙리는 한국과의 조별리그에서 2골을 넣으며 4대2 승리를 견인했다. 앙리는 “당시 우리가 브라질에 0대2으로 졌기 때문에 한국을 꼭 잡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 전 대회 우승팀 프랑스는 개막전에서 세네갈에 충격적인 패배(0대1)를 당했다. 앙리에게 2002년 6월1일자 본지를 보여줬다. 앙리는 ‘악몽’이라는 제목과 함께 자신이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지면을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사람 생각은 다 똑같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고의 무대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3연속 득점왕(2003~2004,2004~2005, 2005~2006). 올 시즌 부상으로 일찍 시즌을 접으면서 득점왕 자리를 디디에 드록바(첼시·20골)에게 내줬지만, 앙리가 최고의 골잡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앙리는 축구 선수로서 명예와 부도 함께 거머쥐었다. 연간 수입이 축구 선수들 가운데 호나우지뉴(3270만달러·약 303억원), 데이비드 베컴(2970만달러·약 276억원)에 이어 3위(2140만달러·약 199억원)다.

프랑스 빈민촌에서 가난한 이민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불우했던 청소년 시절을 딛고 ‘축구 갑부(甲富)’로 올라 선 티에리 앙리(Thierry Daniel Henry). 그의 ‘성공 신화’를 어린 시절 추억부터 되짚어봤다.

사진=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당신은 이민 2세이지요? 프랑스 파리에서 서남쪽으로 20여㎞쯤 떨어진 레쥘리(Les Ulis)라는 곳에서 자랐다고 하는데.

"제가 살던 곳은 인구 2만 명이 조금 넘는 곳입니다. 이민 노동자들이 모여들며 생긴 마을이었죠. 아버지는 프랑스령 서인도제도의 과달루프(Guadeloupe) 출신이고, 어머니는 서인도제도 동부의 마르티니크(Martinique) 출신입니다(앙리는 자신의 부모가 레쥘리에 자리를 잡은 지 1년쯤 됐던 1977년 8월17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비원으로 일하셨고, 어머니도 근처 학교의 기숙사에서 일했습니다. 우리는 방2개짜리 작은 아파트에 살았어요. 1층에는 세네갈, 2층에는 포르투갈, 3층에는 서인도제도의 음식 냄새가 풍겨나던 곳이죠. 예전에는 레쥘리에 자주 갔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다 이사를 가서 3년 전쯤 마지막으로 방문한 뒤로는 가질 못했습니다."

지금은 100억 저택에 살고 있지만 이민노동자마을 방 2칸짜리 집서 자라 


―처음 축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축구를 무척 좋아하셨어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으셨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반대로 꿈을 접으셨답니다. 축구 연습을 하고 오면 할머니께서 아실까 봐 축구화를 감추곤 하셨대요.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마음껏 축구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다짐하셨답니다. 전 6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운동장에 가서 축구를 했어요. 가난한 동네였지만, 축구장이 있었죠. 아버지는 골키퍼 역할을 하시면서 제게 축구공을 굴려 주셨어요. 굴러오는 공을 저 보고 차라는 거였죠. 처음이었는데도 아버지는 제게 '티티(Titi·티에리 앙리의 애칭), 더 강하게 차'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린 제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게다가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들처럼 일부터 골을 먹어주지도 않으셨어요. 물론 나도 고집이 있었죠. 골을 꼭 넣고 싶었고, 골을 넣기 전에 먼저 집에 돌아가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죠."

―다른 형제들은 축구를 하지 않았나요?

"위로 윌리(Willy)라는 형이 있습니다. 저보다 7살이나 많은 형은 축구를 잘 했죠. 하지만 형은 약간 게으른 편이어서 뛰는 걸 싫어했어요. 제가 더 축구를 잘 했죠. 형은 축구 선수가 되지는 않았어요. 파리 지하철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남동생이 있는데 이제 13살입니다.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아버지는 당신을 축구 선수로 키우려고 마음먹었던 것인가요?

"아버지는 제 축구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아버지는 정말 헌신적이었어요. 경비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저를 축구 경기에 데리고 다니느라 직장에서 해고되기도 했습니다. 번번이 근무 시간에 늦는 경비원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제가 유소년팀(US Palaiseau)에서 경기를 할 때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부상을 입은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어오셔서 심판에게 항의했고, 결국 주먹다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 저는 팀을 옮겨야 했죠. 아버지께서는 '나와 함께 있으면 너는 분명히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 아들은 프랑스 대표팀에서 뛰게 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죠."

―어머니는 어떠셨나요?

"어머니는 제가 축구에 빠져 지내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셨어요. 아버지는 경기장에서 항상 큰소리를 치며 흥분하거나 때로는 싸움까지 하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싫어하셨죠. 결국 두 분은 제가 8살 때 이혼을 하셨고, 저는 근처 다른 마을로 이사하신 어머니와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아버지는 저를 축구 경기에 데리고 다니셨어요."

―부모님은 모두 프랑스에 살고 계시나요?

"어머니는 파리에서 사십니다. 형네 집과 바로 옆에 붙어 있죠. 아버지는 프랑스 월드컵이 끝난 뒤 과달루프로 가셨어요. 어차피 아버지는 거기서 '티에리 앙리의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도 부족한 게 별로 없으실 겁니다. 태양과 멋진 해변을 즐기고 계시는 거죠."

―동네 축구를 하다가 프로팀에 진출하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

"제가 13살 때 저희 팀이 한 경기에서 6대0으로 이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AS모나코의 스카우트가 경기를 보고 있었죠. 별도의 테스트 요구도 없이 스카우트가 진행됐습니다."

―곧바로 모나코 소속으로 활약하지는 않았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13살 때부터 15살 때까지 클레르퐁텐(Clairefontaine·프랑스국립 축구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배웠습니다. 니콜라스 아넬카(Anelka), 루이 사하(Saha) 등도 그때 함께 축구를 익혔죠. 제 인생에선 세 번의 중요한 전환점이 있었어요. 그 첫째가 아버지 덕분에 축구에 눈을 뜨게 된 것, 둘째가 클레르퐁텐에 들어간 것, 셋째가 아르센 벵거(Wenger) 현 아스날 감독을 만난 것입니다. 그만큼 클레르퐁텐에서 보낸 시기는 제게 중요했어요. 거기서는 매일 똑같은 훈련을 반복, 반복, 또 반복해서 시켰습니다. 처음엔 왜 그러는지 이해도 안됐고, 불만도 많았죠. 예를 들면 2시간 내내 크로스(센터링)만 반복해서 시키는 식입니다. 하지만 그런 훈련 방식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기초를 확실히 다졌던 것이죠. 제가 AS모나코로 돌아왔을 때는 저는 이미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살짜리 딸과 통화하기 위해 세계 어디 가든 시계는 영국에 맞춰놔 


앙리는 AS모나코 청소년(Youth)팀을 거쳐 1995년 모나코와 정식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1996~1997년 모나코를 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시즌 득점은 9골. 스트라이커에서 윙으로 옮겼기 때문에 골을 많이 터뜨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출중한 기량을 인정받았고, 대표팀에 뽑혔다. 1998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월드컵 무대에 서는 영광과 우승 멤버라는 명예를 한번에 얻었다. 앙리는 조별 예선에서 팀내 최다인 3골을 뽑아내며 스타로 떠올랐다.

앙리는 월드컵 후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로 옮겼다. 하지만 앙리는 이탈리아 특유의 거친 몸싸움과 빗장수비에 밀려 적응에 실패했다. 앙리에게 남은 것은 '16경기 출장· 3득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뿐이었다. 좌절에 빠진 그를 불러준 사람이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이었다.

―벵거 감독과의 인연이 깊은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만 해도 윙(wing)으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저를 지켜보던 벵거 감독께서 스트라이커로 돌려 놓으셨죠. 그는 제겐 정신적인 아버지(Spiritual father)입니다. 저를 잘 이해하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죠. 가장 중요한 것은 저를 언제나 믿어준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스날로 옮긴 뒤 첫 시즌에 17골(31경기 출장)을 뽑았고, 2001~2002 시즌엔 처음으로 득점왕(24골)에 올랐습니다. 작년에 은퇴한 데니스 베르캄프(Bergkamp)와도 정말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앙리는 2001~2002시즌 팀을 리그와 FA컵 정상에 올려 놓았다. 아스날 서포터들은 그를 '앙리 왕(King Henry)'이라고 불렀다. 2003~2004 시즌에는 팀의 무패 우승 신화까지 이끌며 프리미어리그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앙리는 그라운드 밖에서의 사회 활동에도 열심이다. FIFA(국제축구연맹)의 반(反)인종차별 대사로 활동하는 그는 가난과 인종 차별로 고통 받는 빈곤층 아이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원 포 올(One 4 All)'이라는 재단도 만들었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 노력으로 타임스의 표지에 등장하기도 했다.

티에리 앙리가 딸 테아를 안은 채 부인 니콜 메리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인종 차별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뭡니까?

"어렸을 때 파리 시내 백화점에 놀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제가 곧 물건을 훔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불행히도 인종차별은 지금도 그라운드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축구 경기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인종차별과 맞서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감옥에 갈만한 일인데, 경기장에서는 그냥 넘어가곤 합니다. 경기장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용인이 되는 거죠. 저는 이게 아주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를 바로 잡는 것은 정치인의 역할이겠지만, 선수들도 이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나마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이제 'Stand Up Speak Up(일어나서 외쳐라)캠페인'(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통해 많이 개선됐습니다. 인종 차별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합니다. 부모가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주면 자식은 부모로 인해 잘못된 가치관을 갖게 되기 때문이죠. 세상은 함께 어울려 사는 곳입니다.


# 그라운드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에 맞서야


축구경기장에서 특정 선수를 향해 (원숭이라고 비하하는 의미에서) 바나나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경기장에서 사람들이 내게 침을 뱉었어요. 저는 심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는 어쩔 수 없다고 했죠. 경기장에 경찰관도 있고, TV카메라도 있고, 엄청난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그 속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수가 있나요? 테니스 같은 종목에선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축구 선수가 90분 동안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제가 은퇴한 뒤에라도 누군가가 저로 인해 혜택을 받고 상황이 개선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축구 철학은 무엇입니까?

"축구는 기본적으로 이기기 위한 게임입니다. 이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축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는 것(We play)'라고 생각합니다. 축구에 참여해 선수를 배치하고 함께 작전을 짜고 풀어가는 그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축구 자체만 놓고 보면 엔터테인먼트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한 팀이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팬들은 즐겁습니다. 팬들이 즐겁다면 그것이 바로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것이죠."

―판 바스턴(Marco Van Basten) 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존경한다고 했는데, 그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입니까?

"제가 대표팀에선 배번을 12번으로 하는 것도 그를 존경하기 때문입니다.(판 바스턴이 유로88에서 네덜란드 우승을 이끌 때 12번을 달았다.) 그의 모든 것을 존경합니다. 그의 플레이, 인간성, 자신감이 다 좋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축구를 즐길 줄 알면서도 자신에게 엄격해야 할 때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위대합니다. 저는 그의 슈팅을 따라 하며 축구를 익혔습니다."

―축구 선수 11명 가운데 가장 어려운 포지션은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골키퍼와 스트라이커가 가장 힘든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골키퍼의 실수는 곧바로 골로 연결됩니다. 골키퍼가 10개의 슛을 잘 막아내더라도 단 1개의 골을 허용하면 바로 욕을 먹죠. 그래서 골키퍼는 어려운 자리입니다. 수비는 팀 플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서로 보완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담이 적어요.

스트라이커도 골키퍼와 비슷한 입장입니다. 만약 점수가 0대0으로 끝난다면 스트라이커는 온갖 비난을 받게 됩니다. 조금만 덜 움직여도 '스트라이커가 도대체 움직이질 않는다'는 식으로 욕을 먹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승패는 스트라이커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스트라이커에게 쏠리는 관심은 더 큽니다. 골을 넣지 않아도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며 팀에 기여하는 선수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죠. 골을 넣을 수 없다면 아스날이나 프랑스대표팀에서 내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방심할 틈이 없는 셈이죠."

―부상 당한 상태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심정은? (앙리는 복부 근육과 사타구니 부상으로 올 지난 3월 시즌을 마감했다.)

"밖에서 경기를 지켜 보기만 하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빨리 그라운드에 복귀하고 싶습니다. 이제 영국으로 돌아가면 다음 시즌을 위한 준비에 전력을 다할 예정입니다."

―당신은 빠른 스피드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100m 기록이 얼마나 됩니까?

"어딜 가도 그 질문을 참 많이 받습니다. 축구 선수에게 스피드는 중요하죠. 하지만 축구는 60m만 잘 뛰면 됩니다. 100m를 빨리 달리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뛰면서 볼에 대한 컨트롤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그게 훨씬 어렵죠. 우리 가족들은 모두 달리기를 잘합니다. 삼촌은 학창시절에 400m 육상 선수였어요. 학창시절 지역대회에서 우승을 하곤 했죠. 프랑스챔피언이라는 일부 보도는 사실과 다릅니다. 아버지도 빠른 편이셨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


# 뿌리 생각케하는 서인도제도 음악 즐겨


―경기 전에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자신만의 비법이 있습니까?

"10대에는 랩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냥 신났어요.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듣는 음악을 그냥 들었을 뿐이죠. 하지만 지금은 과달루프의 음악 같은 서인도제도 음악을 듣습니다. 경기 전에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내 뿌리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뿌리가 뭔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서인도제도의 음악을 주로 듣고 있습니다."

-잉글랜드의 대중지를 보면 축구 선수들이 클럽에서 사고를 쳤다는 보도들이 가끔 나옵니다. 당신도 클럽에 갑니까?

"예전에는 자주 다녔어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요즘은 거의 가지 않습니다. 클럽에 자주 가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술을 마시는 곳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나는 클럽에 가서도 음악을 들을 뿐이지 술은 마시지 않거든요."

-술을 전혀 안 한다는 얘깁니까?

"딸 태아(T a)가 태어났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아 샴페인을 마신 적은 있어요. 하지만 술이 저와는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면 내가 와서는 안 될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딸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죠.

"제 딸 테아는 지난 5월27일 두 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딸 이야기가 나오자 앙리는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테아가 태어난 다음엔 제가 기저귀 당번을 맡았죠. 세계 어디를 가든 지 시계를 영국에 맞춰 놓고 신경을 씁니다. 딸과 통화하기 위해서죠. 제가 이렇게 집을 떠나 있으면 아내 혼자 딸을 챙기느라 힘들 겁니다."

앙리는 영국의 모델 출신 니콜 메리(Nicole Merry)와 만나 결혼했다. 둘은 자동차 광고에 연인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은 100억원 상당의 대저택에 살고 있다.


# 유럽서 뛰는 한국 선수들 실력 이미 검증


―부인과는 어떻게 만났습니까?

"니콜은 2002년 1월3일 런던의 한 레스토랑에서 친구의 소개로 만났어요. 광고는 그 후에 찍었죠. 우리는 2003년 7월5일에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제왕절개로 딸을 낳았죠. 자연 분만을 하고 싶었는데, 아이가 거꾸로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분만실에 함께 들어가서 출산 과정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머리를 지금처럼 빡빡 밀고 다니는 이유가 있습니까?

"처음에 한번 기분 전환으로 해봤는데, 내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다른 스타일로 바꿔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인내심이 없어서 이내 깎고 맙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는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이 나를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하는데, 세상엔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판 바스턴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이나 사무엘 에투(Samuel Eto'o·FC바르셀로나·카메룬 출신) 등을 최고로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적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당신은 계속 부인해 왔습니다. 만약 당신의 정신적 스승인 아르센 벵거 감독이 다른 팀으로 옮겨 간다면 당신도 함께 갈 의향이 있습니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가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현재 같은 팀에 있다는 사실이죠."

조정훈 기자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에 대해 알고 있나요?

"서~올(설기현), 파~악(박지성), 리~(이영표)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축구는 엄청나게 발전했어요. 그들은 그 때 이미 검증을 받은 선수들입니다. 사실 유럽출신 선수가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들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와서도 좋은 기량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티에리 앙리는?

●출생=1977년 8월17일 프랑스 파리 근교 레쥘리 ●체격조건=1m88, 83㎏ ●애칭=티티(Titi) ●소속=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364경기 출전· 226골) ● 클럽 경력=AS모나코(프랑스·1994~1998), 유벤투스(이탈리아·1998~1999), 아스날 (잉글랜드·1999~현재) ● 프랑스대표팀 성적=92경기 39골(1997년 첫 선발), 월드컵 우승(1998), 유럽선수권 우승(2000), 월드컵 준우승(2006) ● 주요 수상=프리미어리그 득점왕 4회(2001~2002, 2003~2004, 2004~2005, 2005~2006), FWA(잉글랜드축구기자협회) 올해의 선수 3회(2003, 2004, 2006), 유럽 골든 부트(Golden Boot) 2회(2004, 2005), 프랑스풋볼 올해의 선수 5회(2000, 2003, 2004, 2005, 2006) ●연간 수입=약 199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