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인 6일 낮 12시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 ‘4형제 묘역’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6·25’와 베트남전에 참전해 전사한 ‘4형제’를 위한 추모제가 열린다.
5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이부근(70·울산 남구)씨가 11년째 계속하고 있는 행사다. 이 씨는 “형제들이 전장에서 쓰러져 간 지 50년이 넘었지만 당시의 아픔과 상처가 아직도 찌릿하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 씨가 13세 되던 해 6·25가 발발하자 세 명의 형들이 일제히 전장으로 달려갔다. 이 씨는 너무 어려 따라 나서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세 아들의 전사통지서가 차례로 날아들었다. 이 씨의 아버지는 화병을 앓다 세상을 등졌다.
세월이 흘러 이 씨가 30세 되던 해에는 막내인 성근(당시 23세)씨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 씨는“막내가 베트남전에 자원병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파병 하루 전에서야 알았다”고 했다. “당시 세 명의 아들을 전장에서 잃었던 어머니와 내가 극구 말렸지만, 막내는 결국 전장으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것이 동생과의 마지막 이별이 됐다. 얼마 후 동생의 전사 통지서가 전해졌다. 막내 아들까지 전장에서 잃자 이 씨의 어머니 마저 앓아 누웠고, 6년여 동안 고생하다 앞선 아들들 곁으로 갔다.
이 씨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인 1971년 네 아들을 나라에 바친 공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이 씨는 “뒤늦게라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형제들의 넋은 위로 받았지만, 나는 부모마저 모두 잃고 외톨이로 남겨졌다”고 말했다.
이 씨는 형제들의 구국정신을 후세에 알리고, 부모의 한(恨)을 위로하기 위해 1997년 자비를 털어 추모제를 마련했다.
추모제는 이후 4년간 이어졌고, 2001년부터는 국가보훈처가 경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2~3년 전부터는 추모제 행사 때 300~400명이 참석하는 등 시민들의 관심도 커졌다.
이 씨는 매년 추모제를 여는 것 외에도 수시로 호국정신 현장교육을 위해 ‘4형제 묘역’을 찾는 학생들에게 형제들의 호국정신을 설명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겪지 않은 전후 세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에 이 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6·25전쟁’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추모제를 통해 현재의 자유로운 대한민국은 아버지 세대가 목숨을 바쳐 지켜낸 소중한 대가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