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화의 대표적 작가인 남농 허건(1908~1987) 작고 20주기를 맞아 덕수궁미술관에서 시작한 ‘남농 허건’전(10일까지·02-2022-0615)이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전시가 끝나면 전북 도립미술관에서 7월 6일부터 8월 19일까지 전시를 이어 한다.

이번 전시는 남농의 전 생애 작품 110점으로 엮은 회고전이지만 특히 1945~1960년에 그렸던 실경(實景) 산수화에 무게가 실렸다. 일반인들에게는 그가 70~80년대에 했던 단단하고 강인한 소나무 그림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는 그의 50년대 역작들에 초점을 맞춰서 남농 작품의 ‘꽃’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평이다.

미술평론가 이구열씨는 “남농은 1950년을 전후한 때에 필력이 가장 좋았다. 이 전시에서는 과거 어떤 남농 전시에서도 볼 수 없었던 당시의 역작이 여럿 나왔다.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던 작품의 소재를 잘 추적한 좋은 기획전이다”라고 말했다.

▲남농 허건(위)은 습윤한 남도의 풍경화에 뛰어났다. 작품은 1951년에 그린 조춘고동(早春古洞). 종이에 수묵채색으로 이른 봄 풍경을 그렸다. 남농기념관 소장, 덕수궁미술관 제공.

남농은 소치 허련의 손자, 미산 허형의 아들로 이른바 ‘허씨 일가’의 맥을 이었던 화가다. 허씨 일가는 사의(寫意·외형만이 아닌 정신과 뜻을 그리는 것)를 중시하는 ‘남종화’를 추구했다. 박우홍 동산방 화랑 대표는 “남농은 관념적인 것에서 그칠 수 있는 남종화풍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계승했기에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최은주 덕수궁미술관장은 “남농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건강했고, 자신의 고향인 남도 지역의 풍광과 정취를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 그림과 어울리는 글을 함께 적어 풍경의 정취를 강하게 전달했기에,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작가가 드문 요즘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남농은 특히 1945년 이후부터 일본화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채색화 기법을 버리고 수묵이 강조된 산수를 집중해 그렸다. 전국을 여행하며 점묘법, 갈필법 등으로 실경을 담아내는 데 힘을 쏟았다. 이런 화풍에 ‘신남화’라는 이름도 붙었다. 운림산방, 목포근교의 풍경 등에 남도의 정취가 살아 있다. 특히 쌀 알갱이 같은 미점(米點)을 가득 찍은 수묵화에 습윤한 분위기가 담겼다.

2층에 진열된 운보의 남농 초상화, 미당 서정주가 직접 시를 곁들인 합작화 등도 전시를 보는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