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조선은 문사(文士)의 나라였다.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이라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문사를 우대하는 정책이었다. 문사는 무엇인가. 바로 필(筆)을 잡는 사람이다. 유교문화권에서 학자, 선비, 문사라고 하는 사람은 공통적으로 붓으로 문장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학자치고 문장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 조선시대에 명문가가 되려면 그 집안에서 문필(文筆)을 잡는 학자가 나와야만 하였다. 부자가 나온다고 해서 명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퇴계, 고봉, 율곡, 고산 같은 인물을 배출한 집안들은 400~500년 동안 계속해서 명문으로 대접 받아왔다. 조선시대에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선망의 대상은 바로 이러한 학자요, 문필가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터를 잡는 데에 있어서도 문필봉(文筆峰)을 특히 중시하였다. 산청의 필봉산, 영양의 주실마을 앞 봉우리, 임실 삼계면 앞에 보이는 문필봉, 담양의 삼인산 등이 유명한 문필봉들이다. 문필봉이 바라다 보이는 동네는 한결같이 한가락 하는 인물들이 배출되곤 하였다. 답사를 다니다 보면 30리 밖에서도 저 동네에서 인물 하나 나왔겠다 하는 짐작이 되는 터가 보이는데, 이런 곳은 예외 없이 잘생긴 문필봉이 포진한 곳이다.

조선유학 500년의 문필적 전통은 현대에도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문필가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직장 두 군데를 꼽는다면 대학과 신문사가 아닌가 싶다. 대학교수는 강단과 상아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주로 논문을 쓴다. 신문사 기자는 강호에서 피를 튀기며 기사와 칼럼을 쓴다. 대학이 강단이라면 신문사는 강호라는 점이 다르다. 교수가 강단필(講壇筆)이라면, 신문기자는 강호필(江湖筆)이다. 대학총장이 ‘강단총장’이라고 한다면, 신문사 사장은 ‘강호총장’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신문사 사장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언론사 사장이 아니라, 강호필들이 모여 있는 강호총장이라는 개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어떤 팔자를 지닌 사람들이 강호총장을 하는가? 얼마 전에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을 만나서 본인의 태몽을 물어 보았더니 할머니가 ‘대통을 받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대통은 ‘대나무로 만든 필통’을 가리킨다. 필통은 여러 붓을 꽂아 놓는 도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