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만나기를 3번쯤 반복했습니다. 싸웠다거나, 어느 쪽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던 것도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둘 사이가 다른 어느 때보다 좋아졌다고 서로 느낄 때 갑자기 남자친구가 제게 “널 정말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고는 각자의 시간을 갖자더니 멀어집니다. 제가 뭘 잘못해서 그런 건지도 모른 채 아파하다가 좀 견딜만하면 그 쪽에서 다시 연락을 합니다. 이제는 제가 피하지만 매달리고 저 아니면 안 된다고 해서 다시 만나면 또 “이게 사랑일까?”라며 헤어지자고 합니다. 이런 짓을 반복하다가 요즘 결혼 얘기가 슬슬 나오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왜 그런 걸까요? (논현동에서 J )
서로 좋아하고, 만났을 때에는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만 되면 진도 나가기를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이나 종교적 문제, 혹은 경제적 어려움과 같은 환경적인 요소가 걸림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격적으로도 잘 맞고 둘이 있을 때에는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천생연분인가 싶은데, 갑자기 상대방이 거리를 두려고 뒤로 물러서 버리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빨리 진도를 뽑아서 결혼이란 안정적 계약을 맺어야 할텐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아마 J씨의 남자친구처럼 둘 사이의 관계가 한 단계씩 진전할 때마다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란 ‘나쁜 스트레스(distress)’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장을 받는 것, 수상소감을 말하는 것과 같은 흥분감을 일으키는 ‘좋은 스트레스(eustress)’도 있습니다.
J씨와 가까워졌습니다. 예전에 사귀던 사람 같으면 나쁜 점도 적당히 보여서 적당히 거리두기가 가능했는데 J씨는 그런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 동안 찾던 이상형인 것 같습니다. 정말 저 사람이 그 사람인지 누가 확인해 줬으면 하는데 직감은 ‘맞다’라고 하니 너무 쉽게 풀리는 듯 하여 도리어 겁이 덜컥 납니다. 이러니 스트레스를 확 받는 것입니다. 1929년 월터 캐논이란 학자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란 싸우거나 도망가는(fight or flight)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남자 친구는 이 좋은 스트레스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긴장되는 상황이니 무조건 어떻게든 여기서 빠져나겠다는 생각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도망쳐 거리를 두고 난 다음에 안심을 하고 다시 전보다는 가까이 접근하지만 또 어느 이상 가까워지면 다시 예전의 스트레스에 의한 불안감이 엄습해 도망가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지요.
p.s 인생이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마련입니다. 눈앞의 벽에 부딪혀 뒤로 도망가는 심리야 이해할 수 있지만 둘 사이의 관계에서 이러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거기다 매번 아무런 ‘벌칙’ 없이 풀어주고 다시 받아주는 것을 반복하는 모성적 관대함은 J씨의 남자친구의 행동을 습관화시켜줄 수 있습니다. 만일 이제 결혼을 고민하는 시기라면 무책임하게 도망가려는 그의 발목을 단단히 잡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말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을 하면 ‘맞아 넌 나 좋아해’라고 말하고 주도적으로 손목잡고 나가세요. 그는 사실은 당신의 이끄는 손길을 내심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건국대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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