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던 부처님 오신날(5월 24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 국보전을 관람했다. 일반 공개 이틀째, 게다가 휴일이니 관람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쏟아지는 폭우를 믿고(?) 과감하게 관람을 감행했다. 희망은 빗나갔다. 인산인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들을 동반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박물관의 안팎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동행한 일본인 고고학자들은 관람객 수에 질려 “스고이(굉장하군)”를 연발했다.
물 건너온 325점의 보물들은 둔감한 나의 정서를 자극하고 짙은 감동을 남겨 놓았다. 관람을 끝낸 후의 감정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것이었다. 용맹함(勇)과 우아함(優), 중국적인 것(中)과 서양적인 것(西), 아름다움(美)과 추함(醜), 웅장함(雄)과 아기자기함(精).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감동의 계주였다.
勇(용)=관람객을 처음 맞이한 것은 한 쌍의 사나운 돌짐승이었다.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무덤을 지키기 위해 배치된 녀석들은 사나우면서도 위엄이 있다. 한나라 청동 의장대의 기마무사들은 고집스럽도록 용맹해 보이고, 북주의 갑옷 입은 무사는 우직스럽게 무덤을 지킨다.
優(우)=마왕퇴 한묘에서 출토된 칠기 술단지는 직선과 곡선, 검은 색과 붉은 색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뚜껑에는 황금색의 오리 모양 장식을 붙여 우아함을 한껏 자랑한다. 단정하게 두 손 모은 동진 여인은 수려하면서도 기품 넘친다.
西(서)=우홍이란 사람의 무덤에서 발견된 백옥 덧널에는 코끼리를 타고 사자를 사냥하는 인물, 말 타고 사냥하는 광경, 소와 사자의 싸움, 잔치 벌이는 모습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수염이 무성한 심목고비(深目高鼻·눈이 깊숙하고 코가 높음)이다. 한눈에도 백인종임을 알 수 있다. 은잔 속의 사냥하는 인물은 무성한 턱수염의 페르시아인이다. 당나라 문화가 국제적이란 사실을 너무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中(중)=중국인들은 옥에 생명을 부활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었지만, 옥은 그 생산이 제한돼 있었다. 그들은 대신 옥의 색을 재현한 청자를 만들어냈다. 청자는 중국을 세계 최고의 도자기 생산국으로 이끌었다. 지극히 중국적인 청자는 양자강 남쪽에서 활짝 꽃피웠다. 도록에서나 볼 수 있던 강남의 청자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美(미)=양팔을 앞에 모으고 새초롬이 앞을 응시하는 당나라 여인은 매혹스럽고, 두 팔 벌려 사뿐 춤추는 북제(서기 6세기 후반)의 여인은 아름답다. 머리가 잘렸건 머리만 남았건 돌로 만든 보살상을 보노라면 "성스러운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성스럽다"는 어느 미술사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醜(추)=당나라 사람들은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을 한 괴물 한 마리와, 짐승 얼굴에 짐승 몸통의 괴물 한 마리를 쌍으로 무덤에 넣어 침입자를 막았다. 당연히 그 얼굴은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기괴하면서도 추하다. 이번에 전시된 유물들은 중국 각지에서 출토된 국보급들이다. 특히 한나라와 당나라의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나라와 당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왕조였다. 달리 표현하면 주변 국가들을 힘으로 억누르고 중화제국을 실현한 왕조이기도 하다. 그 와중에 위만조선이 한나라에 의해 멸망됐고, 백제와 고구려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하필 한나라와 당나라를 중심으로 삼은 이번 전시가 우리들에게는 못마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은 정치를 초월하고, 국경과 민족을 넘어선다. 이처럼 위대한 예술품을 만들어낸 것을 보면 인간이란 참으로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그러고 보니 폭우에 장사진을 이루면서 북새통을 치렀건만 관람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 모두 상기된 표정이다. 인류 문명의 위대함에 대한 긍지라면, 나만의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