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안팎에서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러시아 대통령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러시아 내 반푸틴 세력의 선봉에는 미하일 카시야노프(Kasyanov) 전 총리와 ‘연합시민전선’ 설립자 가리 카스파로프(Kasparov)가 서 있다.
‘러소포비아(Russophobia· 러시아 혐오증)’의 꼭두각시인가, 아니면 러시아 민주화운동의 투사인가.
전(前) 세계 체스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44)는 요즘 이처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다. 체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한국에서 그는 그다지 유명한 인사가 아니다. 하지만 1996년 인간과 수퍼컴퓨터의 체스 대결에서 6전 3승2무1패로 IBM의 수퍼컴퓨터 ‘딥 블루’를 물리친 러시아 천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제법 있을 것 같다. 바로 그 때의 주인공이 카스파로프다.
그는 지난 4월 14~15일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 대통령을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 뉴스메이커로 부상했다. 당시 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 등 서방 언론은 정치인으로 변신한 카스파로프의 생애를 부각하며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내 저항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이즈베스티야 등 러시아 언론들은 그를 “서방의 광대에 불과하다”며 “시위는 시민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고 깎아내렸다.
카스파로프는 5월 초 미국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명단에 러시아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푸틴에 저항하며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의 평가는 완전 딴판이다. “(러시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미국이 자기 입맛에 맞는 카스파로프를 자의적으로 골랐다”고 혹평한다.
지금은 아제르바이잔 땅인 바쿠에서 유태인 아버지와 아르메니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카스파로프. 22살이 되던 1985년 11월, 당시 ‘소비에트 영웅’으로 불렸던 디펜딩 챔피언 아나톨리 카르포프를 이기고 체스 역사상 최연소 세계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로부터 12년간 세계 타이틀을 지켰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체스플레이어’ 카스파로프는 왜 반(反)푸틴, 반정부 지도자가 됐을까.
이에 대해 그는 “2004년 말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언론 등을 통제하고 있던 2004년 11월,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집권여당의 부정선거가 자행되자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결국 새 대통령을 만든 혁명을 계기로, 자신도 이 때 반정부 운동에 투신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카스파로프의 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는 2005년 3월 체스계에서 은퇴를 선언한 뒤, 한달 뒤인 4월 야당 성향 단체 ‘연합시민전선(the United Civil Front)’을 결성했다. 이 때는 오렌지혁명의 분위기가 한창 러시아에도 영향을 미치던 시점이었다.
카스파로프는 지금도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푸틴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닌, 모든 정파와 국민을 아우르는 대통령을 국민이 2008년 3월 대선에서 뽑는 데 기여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난 러시아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이 없다”고 한다.
그는 자선사업도 하며 모스크바에서 카스파로프재단과 국제체스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서방에서 카스파로프를 러시아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묘사하는 것은 이런 그의 발언 및 행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인들은 카스파로프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외부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카스파로프는 정치와 인연이 깊고, ‘정치적 철새’라는 인식까지 있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라는 용어가 태동하기 직전인 1984년 그는 소련공산당에 가입했다. 1987년엔 공산주의 청년단체 ‘콤소몰’의 중앙위원으로도 선출됐다. 소련이 붕괴된 1990년, 공산당을 떠난 그는 1993년 자유주의 정당 ‘러시아의 선택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리고는 1996년 러시아의 선택당이 비난했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재선(再選)을 도왔다.
옐친은 1999년 말 자신의 후계자로 푸틴 당시 총리를 지명했다. 결국 옐친과 인연이 있었던 두 사람, 푸틴과 카스파로프의 운명은 확연히 갈렸다. 한 사람은 연임에 성공해 5월 현재 국민들로부터 81%의 지지를 얻는 대통령으로, 다른 한 사람은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하며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최근의 몇몇 에피소드는 카스파로프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2005년 1월 그는 “러시아의 안정은 푸틴이 아닌, 부시(미국 대통령)같은 민주주의 지도자와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가 청중들로부터 계란·케첩세례를 받았다. 지난 4월에도 역시 반푸틴 연설을 하다가 자신이 한 팬에게 사인해줬던 체스판으로 머리를 얻어맞았다. 아직은 그에 대한 러시아내 평가가 너그럽지 못하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