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경북 안동에 있는 외가에 놀러 다닐 때 기억이 잊히지 않아 ‘마음의 고향’에 왔거니 생각했는데….”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중년 신사가 중얼거렸다. “겉으로 봤을 때는 학교가 아담하고 풍경도 아름다워 낭만적이라고 느꼈는데, 전교생 중 3분의 1이 급식비를 못 낸다니요….”

14일 오전 강원도 횡성군 우천중학교(교장 현원명)를 찾은 유상호(47)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학교 건물에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색 바랜 칠판은 분필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을 정도로 표면이 일어나 있었고, 낡은 PC가 교실에 앉아 있었다. 그나마 수시로 멈춰버린다고 했다.

이날 오전 승용차를 타고 학교로 향하던 유 사장 앞에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학교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황톳길 양 옆으로 들꽃과 푸른 잡목이 우거져 있고, 드문드문 보이는 축사에선 소들이 여물을 씹고 있었다. 비닐하우스에서 밭일을 하다 흐르는 땀을 닦는 아낙들도 보였다. 이런 낭만이 학교의 실상을 알아버린 순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난 3월 이 학교는 조선일보 ‘스쿨 업그레이드’ 캠페인 기사를 보고 “낡은 칠판을 갈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한국투자증권은 “미래의 원동력인 학생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며, 전국 21개 학교에 교육 기자재 1억원어치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각 학교별로 지원되는 물품은 전자교탁, LCD 프로젝터, 전동스크린.

14일 오전 유 사장은 첫 수혜학교인 이 학교에 들렀다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시골 학교 사정을 알게 됐다. 유 사장이 말했다. “선물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이런 학교를 내 손으로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대식(56) 교감은 “낡은 칠판을 갈아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몇 곱절 더 좋은 선물을 받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전자교탁에 선생님이 적는 글자가 그대로 프로젝터에 떠오르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낮은 탄성을 질렀다.

유 사장은 “10년 후, 20년 후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달, 일주일, 하루 후 계획 세우기를 게을리 하지 마라”고 아이들에게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