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70여명의 레이싱 걸이 각종 레이싱 대회와 모터쇼, 전시행사에서 활발히 활동중이다.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열리는 국내 최고의 레이싱 대회인 `슈퍼 레이스'에서 각자의 팀과 선수, 스폰서를 널리 홍보하고 있는 레이싱 걸. <용인=조용희 기자 pupo4@sportschosun.com>

본격적인 카 레이싱 시즌에 접어들면서 '레이싱 걸'들의 주가가 부쩍 뛰고 있다. 늘씬한 외모와 화려하면서도 아찔한 의상, 세련된 매너 등을 갖춘 레이싱 걸은 이제 열정적인 팬들을 확보할 만큼 다채로운 끼를 갖춘 여성들의 전문직종으로 각광받고 있다. 레이싱 걸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 매스컴의 집중 조명세를 받고, 그 여세를 몰아 연예인으로 진출하는 등식이 성립해왔기 때문이다.

레이싱 걸은 모터쇼나 신차 발표회 때의 도우미보다는 조금더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통 1년정도 소속팀과 계약을 맺는 점을 감안하면 소속팀의 레이싱 카나 드라이버, 엔지니어 등에 대한 구체적이면서 전문적인 정보를 갗춰야 한다. 국내 레이싱 걸을 운영하는 레이싱 팀은 13~14개 정도. 한팀당 최대 4명 정도의 레이싱 걸을 데리고 있다.

레이싱 걸들은 일반적으로 1m72~73의 키에다 '끼'를 갖춰야 한다. 얼굴이나 몸매, 피부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만큼 필수적인 요건은 아니다. 대신 에이전시 업체들은 이보다 '인간성'을 중시하는 경우가 더 많다. 조금 유명세를 탓다고 과다한 요구나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현재 레이싱팀에 소속된 레이싱 걸과 프리랜서의 비율은 7대3 정도로 소속팀 비율이 높다. 반면 모터쇼의 경우 대체로 프리랜서로 움직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레이싱 걸들의 보수는 능력이나 경력에 따라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 A급의 경우 35만~40만원, B급은 30만~34만원, 신인급은 25만원 정도다.

레이싱 대회에서 눈길을 끌기 시작한 레이싱 걸들은 모터쇼나 각종 신차 발표회때 '초빙'된다. 레이싱 대회보다 짧은 기간 운영되는 모터쇼나 신차발표회 때 발탁된 레이싱 걸들은 아주 드물지만 많게는 하루 100만원까지 보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상위 7%내에 드는 도우미들의 일당은 40만~60만원선이며, 보통은 18만~25만원 정도.

때문에 모터쇼 등에서 인기 레이싱 걸들을 잡으려는 에이전시들의 경쟁은 굉장히 치열하다. 지난 서울모터쇼 기간(4월 6~15일) 중 일어난 경미한 폭행사건도 이로인해 발생한 경우다. 이미 계약을 끝낸 팀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에이전시로 옮기는 과정에서, 또는 다른 행사일정과 겹치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해 우발적인 몸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레이싱 걸들은 아무래도 일시적인 모터쇼 도우미 행사나 신차 발표회보다는 지속적으로 팬들과의 접촉을 할 수 있는 레이싱 대회 행사를 더 중시한다. 모터쇼의 경우 너무 도우미를 앞세운 홍보 탓에 '모델쇼'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자동차업체들은 도우미들에게 좀더 전문적인 정보제공을 할 수 있는 '인포우미' 양성에 앞장서고 있는 게 최근 추세다. 때문에 레이싱 걸들의 경우에도 단순히 1회성 흥행보조사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전문직업으로서의 위상을 갖춰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국내 에이전시업체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레이싱 걸에 관련된 주변 문화가 열악한 게 현실"이라면서 "업체에서도 체계적인 관리나 조직을 수립해야 하지만, 높아지는 인기에 걸맞게 레이싱 걸들 역시 전문성과 소양을 갖춰나가야 하는 게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오전 5시30분, 눈이 저절로 뜨여졌다. 어제도 역시 잠을 설쳤다. 신인 시절엔 설레여서였다지만 데뷔한지 4년째가 된 지금도 오랜만에 서킷에 나서면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

기본적인 화장과 머리를 한 후 7시30분까지 부랴부랴 집합장소인 강남역으로 갔다. 모두들 잠을 설친 듯, 졸린 모습이다. 8시를 조금 넘겨 용인 스피드웨이 서킷에 도착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화장이 잘 됐는지 다시 손을 본다. 데뷔 초기에는 화장도 머리도, 그리고 유니폼도 모두 어색했는데 이제는 얼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오전 9시.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낮에는 더울 정도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하다. 한 동료가 팔에 닭살이 돋았다며 호들갑이다.

서킷에서는 레이싱 연습이 한창이고 관중들은 아침부터 몰려들기 시작했다. 차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다가, 레이싱이 시작되면 서킷으로 나가는 일을 반복한다. 3시간쯤 서 있자 서서히 발이 아프다. 입맛이 없어 점심은 건너뛰고 살짝 팀 텐트 뒤로 가서 발에 크림을 바른다. 발에 뿌리는 스프레이 역시 통증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신인 때는 하루종일 웃고 있으면 얼굴 근육이 욱신거릴 정도였는데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묘한 포즈를 요구하거나, 짖궂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팬들은 확실히 예전보다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몸을 움직이는 사이사이 옷 매무새는 늘 신경쓰일 수 밖에 없다.

결승전까지 끝나고 시상식까지 끝나니 어느덧 오후 5시에 가까워온다. 힘들었지만 8시간이 어느덧 훌쩍 지난 것.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자 전신을 두드려맞은 듯 통증이 몰려온다. 집에 도착해 씻는듯 마는듯 그대로 잠에 골아떨어진다. 야호! 다음날 오후까지는 꿈나라다.

국내에는 특별히 레이싱 걸을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레이싱 걸 선발대회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뽑혔다고 해서 모두 레이싱 걸을 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국악예고에서 민요를 전공 후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배우고 있는 김유연의 경우 한 대회 본선에서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를 눈여겨 본 모터스포츠 관계자의 권유로 모터쇼로 데뷔한 후 레이싱 걸로 입문한 케이스. 대학에서 보석디자인을 전공하고 있고 다양한 모델 활동을 한 김재영 역시 모터쇼가 첫 무대였다.

이들이 강조하는 레이싱 걸의 첫번째 조건은 인터뷰에서 강조했듯 건강한 체력. 개인 운동은 물론 몸매 관리를 위해 레이싱이 있는 주에는 음식 조절을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엔 일단 식성이 좋아야 한다. 두번째는 노출에 대한 부담이 있기 때문에 외향적인 성격이 필요하며, 의외로 단체 생활이 많기 때문에 이에 잘 적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레이싱 걸을 연예인이 되기 위한 '등용문'으로만 막역하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내 최대 레이싱 걸 매니지먼트사인 에스에스에이전시의 이민형 실장은 "연예인이 되기 위해 레이싱 걸로 데뷔했다가 금세 포기한 사람도 많았다"며 "연예인이나 모델 등 다양한 향후 진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희소성이 있는 레이싱 걸은 그 자체로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전문 직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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