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아스날전을 보지 않으려 했다. 손자의 축구 경기를 본 뒤 집에 돌아와 경마를 TV로 지켜보고 나서 너무나 할 일이 없어 마지막 15분을 봤다. 고통스러웠다. 첼시가 공격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영국 왕실로부터 1999년 작위까지 받은 알렉스 퍼거슨(66·Ferguson)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도 프리미어리그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만큼은 조바심에 몸이 달았다고 털어 놓았다. 맨유는 7일 오전(한국 시각) 2위 첼시가 아스날과 1대1로 비겨 남은 두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팀 통산 16번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전날 맨체스터 시티를 1대0으로 누른 맨유는 28승4무4패(승점88)로 2위 첼시(24승9무3패·승점81)에 승점 7점 차이로 앞서 있다. 맨유는 2002·2003 시즌 이후 4년 만에 리그 정상 탈환에 성공했고 역대 우승 횟수는 리버풀(18회)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퍼거슨 감독은 "지난 2년간 영국 축구를 지배했던 첼시를 따라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며 "계속 팀을 지도하길 바라며 감독생활을 더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퍼거슨 감독은 1986년 맨유 감독을 맡은 뒤 9번째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서며 라이벌 팀인 첼시의 주제 무리뉴 감독으로부터 '최고의 감독'이란 찬사를 받았다. 그는 정규리그 외에도 FA컵 5차례, 잉글랜드 리그컵 2회, 챔피언스리그 1회, 수퍼컵 1회, 위너스컵 1회, 인터컨티넨탈컵 1회 우승 경력을 지니고 있다.
퍼거슨 리더십의 요체는 카리스마와 신뢰, 과단성(果斷性)이다. 그는 타자기 생산공장에서 일하며 축구를 하던 젊은 시절 대규모 스트라이크를 조직해 30%의 임금 인상을 이끌어 낼 정도로 조직 장악력과 협상술이 뛰어났다.
퍼거슨 감독이 21년간 다스려온 맨유에서는 '천하의 말썽쟁이' 에릭 칸토나와 고집쟁이 로이 킨이 팀의 기둥으로 변신했고, 세계 축구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던 데이비드 베컴이 라커룸에서 눈두덩이가 찢어질 정도로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거나 감독의 위상을 조금이라도 훼손하는 선수는 곧바로 방출해 버렸다. 맨유는 끊임없이 퍼거슨의 의중대로 세대 교체를 하며 부진한 시기가 있더라도 곧 투지 넘치고 공격력 강한 팀으로 돌아 왔다. 반면 신세대 명장으로 손꼽히던 첼시의 무리뉴 감독은 선수 영입을 둘러싸고 구단 수뇌부와 마찰을 빚으며 힘을 낭비했다.
퍼거슨 감독은 올 시즌 주전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 당하는 가운데, 선수들의 포지션을 과감하게 바꾸며 전력손실을 최소화하는 녹슬지 않은 용병술을 과시했다.
수술 후 재활 중인 박지성(맨유·사진)은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박지성은 3개국 리그에서 7차례나 팀의 우승을 경험하는 ‘복덩이’가 됐다.
박지성은 일본 교토에서 일왕배를,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서는 정규리그 2회, FA컵, 수퍼컵 우승을 각각 경험했다. 맨유 이적 후에는 칼링컵과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안았다.
프리미어리그는 리그 전체 경기(38경기)의 4분의 1 이상을 뛴 선수에게만 우승 메달을 수여하며, 박지성은 올 시즌 14경기에 출전했다. 아시아 선수가 가운데 2001·2002 시즌 우승 팀 아스날에 몸담았던 이나모토 준이치(일본)와 올 시즌 맨유의 동팡저우(중국)는 이 규정에 따라 우승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1992·1993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우승 메달을 받아 본 선수는 전체 선수 2465명 중 134명이라고 소개했다. 맨유의 노장 라이언 긱스가 우승 메달 9개로 가장 많이 받았고, 맨유의 게리 네빌과 폴 스콜스가 7개로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