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의 매력은 반성을 모르는 영혼이라는 점이다. 풍차를 향해 뛰어들든 돼지떼를 향해 달려가든, 그는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짓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지하게 우리를 향해 묻는다. “나는 기사도 원칙에 따라 살아가고 있소이다. 당신은 대체 삶의 원칙이 뭐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는 쉽게 답할 물음이 아니다. 개인의 행복이나 가족의 평안을 위해 살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념을 부여잡은 채 낮밤을 보낸 시절을 의식하는 이들에게 그 물음은 깊은 상처를 안긴다. 진지함이나 처절함을 담은 진술과 묘사로 그 시절에 답하는 이야기는 비극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한없이 무겁고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이 지금 여기의 나날을 슬픔의 둑에 가둔다.

최근에는 이 물음을 돈키호테형 인간을 통해 푸는 이야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일찍이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가 독자의 배꼽을 잡게 했고, 중국에서는 문화혁명을 경쾌하게 다룬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가 나왔다. 1960년대 학생운동 세대의 후일담을 신나게 펼친 소설로는 ‘남쪽으로 튀어’(전2권·은행나무·2006)가 최고다.

이 소설은 우에하라 지로라는 초등학생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국민연금도 내지 않고 일본 국민이 되는 것조차 원치 않는 전설의 투사 이치로가 바로 이 소년의 아버지다. 이치로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며 평생 집에서 뒹굴며 지낸다. 그리고 아들인 지로에게 국가에서 가르치는 것들은 모두 무시하라고, 학교에 다닐 필요도 없다고까지 말한다. 이치로가 돈키호테보다 한 술 더 뜨는 것은 올바른 시민이 되기를 강조하는 이들과 쉼 없이 논쟁한다는 점이다. 이치로는 줄기차게 현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맞선다.

‘돈키호테’는 끝까지 현실과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비유로 이야기가 끝나지만, ‘남쪽으로 튀어’에서는 우화로 비쳤던 에피소드들이 놀랍게 현실로 탈바꿈한다. 우에하라 가족은 제목처럼 남쪽으로 튀어 이리오모테 섬에 정착한다. 자연과 벗하며 아름답게 하루하루를 보낼 것 같은 이곳도 관광 열풍이 휩쓴 지 오래다. 불법 점거로 낙인찍힌 우에하라 가족은 합법적인 철거에 맞서 싸운다. 이때 이치로의 돌출 행동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니라 현실을 비판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김탁환 KAIST 교수·소설가

철거 반대 싸움에서 패배한 이치로는 아내와 함께 다시 떠난다. 사회는 그를 사회 부적응자이며 과격분자라고 비판하지만 소설은 그가 평생 한결같은 인간, 패배하더라도 절망하지 않는 인간임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젊은 세대의 소설이 가볍게 손재주만 부리며 내용이 없다는 평을 여러 곳에서 읽었다. 가벼움과 무거움은 삶을 풀어내는 작가의 방법론일 뿐이다. 삶이 참을 수 없이 가벼울 때는 그 허허로움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끌어가야 한다. 자 여기 까불대면서도 한없이 진지한 소설이 있다. 작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무거우면 안 돼. 가볍게, 남쪽으로 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