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종족 중 테란

화창한 봄날의 용산역. 어디선가 신나는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팬플룻의 청아한 소리와 흥겨운 리듬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가끔 지하철역에서 만나곤 했던 에콰도르 아저씨들의 음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직접 가서 보니 로스 안데스라는 이름의 5인조 밴드는 오늘도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다. 신명과 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음악을 들으며, 아이파크몰 9층에 있는 e-스포츠 스타디움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예전에는 삼성동 코엑스에 있었는데 작년에 용산으로 이전을 했다.

오늘은 한빛 스타즈와 MBC 히어로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좌석에는 앉지 못하고 뒤쪽에 서서 경기를 관람했다. 중앙에 커다란 전광판이 있고, 양 옆으로 3개씩 중형 모니터가 배치되어 있어서 관람에는 별다른 불편이 없다. 이미 120개의 좌석은 거의 다 찼고 응원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빅매치가 있는 날에는 500명 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선수들의 경기, 관객의 응원, 방송 스탭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어우러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스타크래프트는 개인전과 단체전이 동시에 운영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MBC 게임이 주관하는 MSL 리그와 온게임넷이 주관하는 스타리그가 있다. 단체전으로는 프로리그가 있는데, 12개의 구단이 참여해서 리그를 벌이고 있다. 요즘 들어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빛 게임단을 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는데, 초반 2경기를 내리 패하면서 분위기가 MBC쪽으로 급격하게 기운다. 다리도 아프고 해서 잠시 바람을 쐬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한빛이 2게임을 내리 따내 동점을 만들더니, 팀의 에이스가 출전하는 5번째 경기마저 이기는 대역전극을 펼치는 것이었다. 실망과 환호가 엇갈리면서 e-스포츠의 한 페이지는 그렇게 넘어갔다.

1998년에 출시되었으니 스타크래프트도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간다. 단순한 게임에 불과한 것 같지만 스타크래프트가 가져온 사회문화적 변화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우선 게임과 인터넷의 결합 또는 게임의 양방향성 구축을 들 수 있다. 배틀넷을 통해서 어디에 있는 누구와도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스타크래프트를 잘 하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게임을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문화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게이머의 폭을 여성들과 30~40대 직장인들까지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게임을 비생산적이고 무용한 것으로 바라보던 사회적 시선을 교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인터넷 게임이 e-스포츠로 진화하게 된 것은 2004년의 일이다. 그해 6월 문화관광부에서는 ‘e-스포츠 발전포럼’을 구성해서 중장기 발전 계획을 마련했다. 여기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같은 해 7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벌어진 프로리그 결승전에는 무려 1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그런 의미에서 e-스포츠는 정부의 정책, 관객의 열정, 선수의 기량, 기업의 후원, 미디어의 지원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난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정보화사회의 대표적인 문화적 이벤트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e-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스타크래프트 또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의 일을 처리하는 멀티태스킹(다중과업)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전체적인 전략에 따라 필요한 건물을 짓고, 상대방의 대응에 따라 적당한 유닛을 생산하며 체제를 전환하고, 부대를 지정해서 개별 전투에 투입한 후 미세하게 콘트롤을 해 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게이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잠재적인 전능감을 느끼게 되고, 또는 유기체적인 신체에서 기계적인 차원으로 전이(trans)되는 듯한 기분을 맛보기도 한다. 자신의 주체성이 분산되고 확장되는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경험은 ‘삼국지’를 읽으면서, 적벽대전을 이끄는 제갈공명에게 감정을 이입했을 때의 심리상태와 조금은 유사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열기와 ‘삼국지’에 대한 관심은 무척이나 닮은 구석이 많다.

다음으로 한국 게이머들의 기량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가 최고 수준의 축구 경기를 보여주듯이, 한국의 게임리그는 게임을 통해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경지를 제공한다. 달리 말하면 ‘내가 지금 최고의 경기를 보고 있다’는 문화적 자부심을 안겨주는 것이다. 게임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월드사이버게임즈에서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은 월드컵에서 브라질 축구팀과 같은 위치에 있다. 프로게이머들에게서 느끼게 되는 문화적 자부심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나 세계 유수의 대회를 제패한 비보이들을 바라볼 때의 느낌과도 매우 흡사하다.

스타크래프트를 둘러싼 문화적 풍경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무엇보다도 무협소설의 배경인 중원이나 강호를 떠올리게 된다. 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달려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대지, 기득권 계층은 존재하지만 권력의 제도화가 안정되지 않은 유동성의 상태, 그리고 어느 곳에선가 무공을 연마하고 있을 무림고수의 존재들. 스타크래프트가 마련한 사이버 중원은 주인 없는 땅과 대제국 사이에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신화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시공간이 펼쳐져 있다. 오늘도 강호의 많은 사람들은 초절정 고수들이 펼치는 극한의 경지에 넋을 잃는다.  / 김동식 인하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