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르 이오셀리아니(Iosseliani)는 소비에트 시기 부조리한 영화검열정책에 시달린 끝에 프랑스로 망명한 그루지야 출신의 거장이다. 망명 이후, 일종의 영화적 론도(rondo)라고 부름직한 음악적 구성과 천연덕스러운 동시에 냉담한 유머가 능숙하게 구사된 작품들을 통해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그는, ‘불한당들’ 제작을 위해 그의 고국 그루지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 변화된 그루지야 사회의 풍경은 그에게 당혹감을 안겨 주었고 그곳의 열악하기 그지없는 영화제작 환경은 그가 “그루지야 영화산업은 죽었다”는 말을 내뱉게까지 만들었다. 그의 영화 가운데 가장 ‘정치적인’ 영화로 간주될 수 있을 ‘불한당들’에서 이오셀리아니는 사회주의를 구실로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특권을 누렸던 소비에트의 ‘불한당들’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오셀리아니가 동일한 배우들을 역사상의 세 시기(중세, 1930년대, 그리고 현재)에 모두 등장시켜 우리에게 역사의 반복을 상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중세의 폭압적인 전제군주로 등장했던 인물이 소매치기 출신의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 구소련의 특권계층)로, 그리고 내전 중인 도시를 배회하다 약탈에 동참하는 걸인으로 다시 등장하는 식이다. 일종의 ‘불한당들의 세계사’라고나 할까. 역사는 반복되지만 그것은 슬픈 반복이다. “진정한 희극은 언제나 슬픔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오셀리아니는 그 슬픈 반복에 분노하기보다는 그걸 비웃으며 역사의 불한당들을 기꺼이 희극의 주인공으로 껴안는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의 추악함을 비웃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아직 희망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원제 : ‘Brigands, chapitre VII’ 1996년 117분 ★★★★★ (5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