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도심에 위치한 한 소련군 동상(銅像)과 소련군 묘역이 에스토니아인들의 여론을 갈라놓고 있다.

정부가 지난 2월 중순 동상·묘역의 이전 계획을 발표하자, 탈린 인구(39만9200명)의 35%를 차지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 러시아계 에스토니아 시민들이 26일 소련군인 동상과 묘 앞에서 공사에 들어간 정부측과 대치하고 있다. 정부는 시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경찰 200여명을 배치했고, 한 시민이 동상쪽으로 접근을 시도하다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미하일 카미닌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이 동상과 묘를 훼손하면 양국관계는 극도로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러시아 연방회의(상원)는 이번 사태를 놓고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대통령에게 에스토니아와의 국교 단절을 호소하는 결의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탈린의 ‘퇴니스메기’ 언덕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인들이 ‘프롱크 쇠두르(영어명 Bronze Soldier)’라고 부르는 이 동상은 1944년 당시 소련 영토였던 이곳을 점령한 나치 독일과 싸우다 전사한 한 소련 군인의 실물(實物) 크기로 1947년에 세워졌다.

오른손엔 철모를 들고 어깨엔 소총을 거꾸로 멘 183㎝ 높이의 동상이다. 주변엔 당시 나치 독일을 상대로 ‘해방 전쟁’을 벌인 소련군 13명의 묘가 비문(碑文)도 없이 자리잡고 있다. 위령비에는 ‘2차 대전에서 죽어간 이들을 기리며’라는 문구가 에스토니아어와 러시아어로 쓰여 있다.

26일 오전 8시부터 이 동상과 묘역 주변에 10대 여학생부터 70대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러시아계 주민 500여명이 모였다. 이날 새벽 4시 30분부터 정부가 묘를 파헤쳐 매장된 시신의 신원이 소련군인지를 확인하고 동상과 시신들을 탈린 외곽으로 옮기려는 작업을 기습적으로 시작하자 이를 저지하려 모인 것이다.

그러나 정부 작업 저지는 실패했고, 주민들은 10m가량 떨어진 맞은편 거리에서 철조망과 작업용 천막을 통해 이따금 보이는 동상과 묘를 바라봐야 했다.
이날 밤에는 시위가 격화돼 시위대가 700여명으로 불어났고, 경찰의 시위 진압과정에서 러시아계 시민 1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부상했다. 경찰에 체포된 인원만 300명을 넘었다.

시민들은 27일 아침에도 “파시즘을 무너뜨린 소련군인 동상과 묘를 사수(死守)하자”고 외치며 동상 쪽으로 행진했으며 도중에 10여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붉은색 카네이션을 다섯 살짜리 딸의 손에 쥐여준 안드레이(38)는 “동상과 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나치파시즘에 대한 승리의 기념물인데 왜 이전하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알렉산드르(63)는 “탈린 시민 57%가 묘와 동상 이전에 반대하는데 정부가 여론을 무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날 시신확인 작업 현장을 지키던 한 경찰관은 "공산체제를 심은 소련의 압제(壓制) 기억을 지우고, 보존 예산을 줄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순수한' 에스토니아계라고 밝힌 에드가르(31)는 "소련에 공산화된 50년간 에스토니아인 1만7500명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왜 우리가 이런 소련의 흉물을 봐야 하느냐"며 이전이 아닌 아예 '철거'를 주장했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자, 롤란드 페츠(Peets) 내무부 대변인과 안십 총리는 “동상과 묘는 전승(戰勝)기념일인 5월 9일까지 현 위치에 있을 것”이라며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논란의 중심인 ‘프롱크 쇠두르’는 27일 아침 에스토니아 정부가 친 천막에 가려 바람때문에 천막이 벗겨질 때만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채, 13명의 ‘동료 군인’이 묻힌 묘를 향해 그저 머리를 숙여 추모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