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거창한 대의명분이나 당위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내는 것. 따뜻하고 사려 깊은 연출로 이 깨달음을 살포시 전달하는 두 편을 추천한다. ‘날아라 허동구’와 ‘내일의 기억’이다.
5월을 수놓을 수많은 영화 중에서, '날아라 허동구'는 가장 소박한 규모의 영화다. 사실 '소박'도 외교적 표현일 뿐이다. 오죽하면 아버지 역을 맡은 정진영까지 "차라리 나도 스타였으면 좋겠다"고 푸념을 했을까.
뉴욕 마천루를 활공하는 거미인간이나 이제는 인도양까지 진출했다는 해적 선장을 손꼽아 기다리는 관객에게, 사실 이 영화는 제목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허동구를 만난 관객이라면, 이 작은 영화의 몸 안에 가장 야무지고 단단한 차돌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허동구의 이야기에 특별히 새로운 건 없다. 남들보다 떨어지는 지능을 가진 동구, 반 평균 깎아먹는다며 동구를 특수학교로 보내려는 담임 선생님, 자식 하나만은 정상적인 학교에서 졸업시켜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며 기름에 닭 튀기는 아버지….
장애를 지닌 아이와 이를 극복하려는 가족의 이야기라면 관객들도 이미 충분히 익숙해진 플롯이다. 그런데 정작 반가웠던 건 그 상투적 드라마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관객보다 먼저 흥분하거나 관객보다 앞서 눈물 떨구지 않고, 주인공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거나 그렇다고 인간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주지도 않는 세심한 연출. 그러고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에피소드로 살을 채운다. 가령 이런 장면. 한 바퀴만 돌기로 한 운동장을 동구는 말도 없이 두 바퀴나 돈다. 그리고 꾸중하려는 선생님에게 천연덕스럽게 대꾸한다. 한 바퀴는 (심장이 약해서 체육시간마다 열외인) 짝꿍 것이라고. 어쩌면 연출의 입장에서는 더 힘을 줬을 영화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두 바퀴 질주 장면보다도 사랑스런 대목이다.
친구들을 위한 물주전자 심부름을 거의 삶의 존재 목적으로 여기던 동구가 교실에 새로 배치된 정수기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할 때, 그리고 인원 부족으로 해체 위기에 처한 야구부에 보결로 들어가 물주전자 심부름에 맘껏 ‘탐닉’할 때도 마찬가지다. 야구 규칙을 알건 모르건 무조건 “오케바리”를 외치는 동구의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부디 마음껏 5월의 하늘을 날아오르길.
▲'날아라 허동구': IQ 60인 초등생 소년 동구(최우혁)와 아버지 허진규(정진영)의 사랑이야기. 어찌 보면 부자 간의 우정 이야기로도 읽힌다. 만년 꼴찌 야구부의 코치 역을 맡은 권오중이 코미디 연기의 감칠맛을 더한다. '달마야 놀자'의 각본을 썼던 박규태 감독의 연출 데뷔작. 4월 2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