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에서 백남준을 이어갈 한국의 스타 작가를 꼽는다면? 해외 미술계의 평론가들은 거의 대부분 김수자(50)와 이불(43)을 앞 순위에 놓는다. 김수자는 뉴욕에 있고 국내전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반면, 이불은 지금 서울에 있다. 그가 종로구 화동 pkm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 11월 프랑스 파리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에 초청된 것을 계기로 그 전시에 낼 작품의 모형을 보여주는 ‘맛보기 전시’다. 이불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전시는 아니지만, 그가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다.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하기 좋은 작은 조각과 벽면 오브제들도 내놓았다. pkm 갤러리의 박경미 대표는 “외국 유명작가들처럼, 큰 전시를 앞두고 컬렉터들에게 작품제작비 후원을 받기 위한 전시로 기획했다”고 하니, 이불이 국제 스타라는 것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듯 하다.

▲이불의 벽면 오브제

이불은 지금 작업 중인 새 작품의 모형을 보여주며 “이뤄지지 않은 꿈, 빛을 잃은 것들, 실패한 이상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이를 위해 한국근대사를 부분부분 소재로 사용했다”고 했다.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한 조각, 물고문을 상징하는 낡은 욕조 모형이 전시돼 있다.

이전에 그는 실제 생선에 시퀸(반짝이)을 달아 생선이 썩어가는 모양을 작품으로 삼고, 로봇과 인체를 결합하고(‘사이보그’), 촉수가 징그럽게 뻗어 나오는 곤충모양을 조각했다(‘몬스터’). 싸구려와 고급, 미와 추의 경계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이상(理想)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이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불은 지금 어깨가 무겁다. 현재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고, 9월엔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초청되는 등 해외전시가 줄줄이 있다. 2009년에는 유럽, 미국, 아시아를 도는 회고전도 잡혀 있다.

▲이불에게“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골라 앞에 서달라”고 하자 그는“다 제 작품이니 하나하나 다 애착이 가지요”라며 벽면 오브제 작품 앞에 섰다.

“제가 중년으로서 세상을 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고, 카르티에 미술관 전시를 잘 해내는 것 등 몇 가지 중요한 순간이 지금 맞물려 있어요. 특히 카르티에 미술관은 건축이 독특해서 도전하기 어려워요. 벽면은 유리인데, 바닥에 거울을 깔 것이라 공간이 확장돼 보일 거예요.”

이불은 1997년 뉴욕 모마 개인전,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등으로 국제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한때 ‘전사(戰士)’라 불릴 만큼 기성 가치관에 저항하는 주제를 담았지만, 작품의 겉모양은 매우 아름다운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맞아요, 저는 미(美)에 대한 취향이 있어요. 예쁜 걸 좋아한다는 게 아니고, 예쁠 수도 있고 그로테스크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의식을 건드려야 한다는 거예요. 미술은 관념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관객의 미의식을 건드려야 해요. 추한 미술이라도 관객의 미의식을 건드리면 예술이죠. 사람에게는 문자로는 건드릴 수 없고 감수성과 무의식의 언어로 건드려야만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음악과 미술이 필요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