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D사는 우수한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늘 고민해 왔다. 결국 이 회사는 외국인을 선택했다.
미국의 인터넷 일자리 경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무려 17만 명이 넘는 프로그래머들이 등록돼 있는 것이다. 인도, 루마니아, 파키스탄, 러시아 등 국적도 다양했다. 얼굴 볼 일은 전혀 없다. 프로그래머들은 바다 건너 자기 집 안방에서 일을 해서 한 달 후쯤 완성된 숙제를 인터넷으로 보내준다.
이렇게 올해 3건의 일을 위탁한 D사 임원은 “경험 많은 일류 프로그래머들이 많고 일 처리도 빨라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 포털인 네이버는 이용자들이 올린 게시물 중 음란물 등을 모니터링하는 업무를 2년 전부터 중국 베이징 현지법인의 조선족 230명에게 맡기고 있다. 한국어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철야 근무도 꺼리지 않고, 임금은 국내의 절반 이하라는 것이 장점이다.
국경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시대. 일감마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국경을 넘는 현장이다. 디지털로 변환될 수 있는 모든 업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싸거나 가장 뛰어난 인력에게 맡길 수 있다. 첨단의 IT 기술이 낳은 신천지다.
하지만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에게는 재앙이다. 지금까지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며 블루칼라의 일자리를 위협했다면, 인터넷을 통한 해외 업무 아웃소싱(outsourcing)은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를 겨냥한다.
특히 지금까지는 콜센터 등 주로 단순 업무에 국한됐는데, 최근엔 고부가가치 업무조차 해외로 빠져나간다. 심지어 미국의 많은 병원들은 주말이나 야간에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한 엑스레이 화면 판독을 인도에 있는 의사들에게 의뢰한다. 앞으로 보모나 이발사 등 대면(對面) 접촉으로 이뤄지는 일 외엔 모두 외국인이 인터넷으로 처리할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민주당 자문역인 앨런 블라인더(Blinder) 교수는 “향후 20년간 4000만 개의 일자리가 미국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을 과거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선 남에게 맡길 수 없는 나만의 기술과 지식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밝지 않다. 외국 기업이 한국에 일감을 맡길 만한지 매력도를 평가한 결과, 아시아 11개국 중 한국이 9위에 머물렀다. 1·2위를 차지한 인도와 중국은 물론, 경쟁국인 싱가포르(3위)와 홍콩(4위)에 비해서도 매우 뒤떨어진다. 임금이 11개국 중 가장 비싼 데다, 영어 실력이 떨어지고, 정부 규제는 까다롭기 때문이다(영국의 경제조사기관인 EIU).
반면 인도는 1억5000만 명의 영어 가능 인력과 IIT(인도공과대학)로 상징되는 첨단 기술 인력에 힘입어 세계의 아웃소싱 기지로 자리잡았다. 요즘 공부 안 하는 아이들한테 미국 부모들이 “공부 안 하면 인도나 중국 아이들이 네 일자리 가져간다”고 나무란다고 한다(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 중).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우물 안에 갇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3불(不) 정책이니 대기업 정책이니 영어 공용화 반대니 하는 것도 다 우리 일자리가 보전되고 나서 할 이야기다. 학생도 기업도 다 그만그만한 범재(凡材)를 길러내는 데 만족하다간, 자칫 우리 일자리가 몽땅 물 건너로 아웃소싱당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