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 대란’이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당한 가격을 치르고 토플 시험을 보려는 사람이 아예 시험 접수조차 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휘감고 있는 토플 대란에 대한 궁금증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1. 토플이 뭐예요
토플(TOEFL: 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이란 미국·캐나다 등 영어권 대학에 입학을 원하는 외국인의 영어 실력을 가늠하기 위한 필수 시험이다. 쉽게 말해,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학생들이 실제로 영어권 대학에서 영어로 수업을 받을 능력이 있는지 평가하는 시험이다. 토플은 1964년 최초로 시행됐다. 최근에는 영어권 대학 입학뿐 아니라 대기업 입사나 북아메리카의 등록간호사(RN)·약사, 캐나다 독립이민, 북아메리카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토플점수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토플점수로 대학 특차전형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다. 국내 대학원 입학 때도 일정 수준을 넘는 토플점수가 있으면 영어시험이 면제되기도 한다.
2. 왜 토플 대란이 벌어지고 있나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토플시험이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에서 미국 서버에 접속해 시험을 봐야 하는 인터넷 기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빠른 네트워크와 고성능 컴퓨터실을 갖춘 대학으로만 시험 장소 자격이 제한되면서 시험을 볼 수 있는 인원이 줄었다.
둘째는 우리나라 초·중등학교에 토플 열풍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고 등 특목고들이 토플점수를 입학 잣대로 삼으면서, 초·중등학교에는 토플 보기 붐이 일고 있다. 외고 준비반을 운영하는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토플점수를 제출해야 하는 이상 과열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 335개교 학생(초6, 중·고2) 2만55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교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고교생 19.8%와 중학생 16.4%가 토플을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강남지역에서는 고교생 28.3%와 중학생 21.7%가 토플 응시 경험을 갖고 있었다. 한미교육위원단에 따르면 매회 2000~2500명의 토플 응시생 중 1400~1600명이 중고생으로, 전체의 70~80% 수준이다.
3. ETS라는 곳은 뭐예요
토플 시험을 주관하고 문제를 출제하는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교육평가원)는 미국 뉴저지에 있는 교육평가기관이다. ETS는 토플 외에 토익, SAT, GRE, GMAT 등 200여개 시험을 주관하고 있다. 테스트센터만 전세계적으로 9000개에 달한다. 교육학, 언어학, 심리학 등을 전공한 석·박사급 직원 2700여 명이 문제를 개발·채점한다.
문제는 ETS가 한국에서 토플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도, 한국인의 토플시험 응시 기회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ETS가 투자를 늘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토플시험 온라인 접수를 받기만 하면 서버가 다운되고, 시험 신청자들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ETS는 한국지사(支社)를 두고 있지 않고, 토플 시험 업무를 대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미교육위원단이 있을 뿐이다. 토플시험 접수 마비 등 문제가 자꾸 불거지자 ETS측은 최근 "이른 시일 내에 한국 지사를 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4. 왜 토플 시험을 볼 수 있는 정원이 줄었나요
토플시험 응시자 수가 해마다 증가함에 따라 시험장소가 늘어나야 정상이지만, IBT(Internet Based TOEFL) 체제로 바뀌면서 거꾸로 토플 응시가능 인원은 줄어들었다. 과거 CBT(컴퓨터를 이용한 토플) 체제에서는 주중에 매일 시험을 볼 수 있었지만, IBT체제로 바뀌면서 월2~4회, 한 회당 900~1000여명만 시험을 볼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19곳에서 토플시험을 응시할 수 있다. 19곳도 시험 센터의 상황에 따라 시험 때마다 볼 수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다. CBT 체제에서는 1년에 10만명이 시험을 봤지만, 현재 시스템으로는 1년에 3만명만 시험을 볼 수 있다.
시험장소 확보가 어려운 이유는 기술적 특징 때문이다. CBT가 문제은행 식으로 계속 문제를 꺼내 출제할 수 있었다면, IBT는 문제은행이 따로 없어 매 회 새로운 문제를 작성해야 한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전세계에서 동시에 시험이 진행되는 특성상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각 시험센터와 계약을 체결하고 거기에 맞는 장치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것이 여의치가 않다.
5. 토플을 대체하는 시험은 없나요
현재 국내에서 개발된 '토종 영어시험'은 TEPS, TESL 등 10여종이 있다. 이 중 6종이 교육부로부터 국가공인을 받았다. 그러나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고, 토종 영어시험 성적을 인정해주는 기업이나 교육기관이 토플만큼 광범위하지 않다.
현재 국내에서는 해외 유학에 필요한 토플 점수는 몰라도, 최소한 국내용 영어검증 테스트로는 '응시료가 싸고 로열티도 내지 않는 토종 영어시험으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교육부가 토플 같은 영어인증시험을 직접 개발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한국 실정에 맞는 공신력 있는 시험을 개발하면, 단순히 영어실력을 측정하려는 토플·토익 수요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가 커지자 교육부는 작년 11월 국가가 주관하는 영어능력인증시험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구체적인 안을 마련 중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 지난 1963년 STEP TEST(실용영어 기능검정)을 개발해 실시 중이다. 현재까지 7000만명 이상 응시한 일본의 대표적인 영어능력시험이 됐다. 중국도 1987년부터 실시해온 전국대학영어고시(CET)에 매년 240만명이 응시하고 있다.
6. 외고가 토플을 포기하면 토플대란이 없어지나요
초·중교생들이 토플에 열광하는 이유는 외국어고 입시 때문이다. 국내 모든 외고 입학전형에서 공통으로 인정되는 공인영어능력시험은 토플이다. 대다수의 외고는 특별전형에서 IBT 88점 이상이면 영어능력우수자 전형의 응시자격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대원외고의 경우 IBT 100점 이상이 지원할 수 있는 국제어과 국제화 전형이 따로 있다.
그러나 외고들이 토플점수를 반영하는 실제 비중은 사실 극히 제한적이다. 절반 이상을 뽑는 일반 전형에는 토플점수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특별전형 중에서도 영어특기자전형의 지원자격으로만 반영한다. 일부 학교만 가산점(최대 3점)을 준다. 영어특기자 선발 규모도 평균 20명 안팎이다. 토플점수가 외고 입시에 필수라는 인식은 잘못된 입시 정보인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영어특기자 선발에서 토플 같은 공인영어점수를 아예 없앤 학교도 있다. 한국외대 부속외고는 올해부터 토플을 아예 반영하지 않는다. 교육인적자원부도 2009학년도 외국어고 입시부터는 토플성적을 전형에 아예 반영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외고 지망생들의 응시가 늘면서 토플 대란이 발생했다는 일부의 분석과 관련, 외고들이 토플을 요구하는 전형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7. PBT CBT IBT란 뭐에요
토플은 발전 단계에 따라 크게 3종류로 나뉘어진다. PBT(Paper-based TOEFL Test)는 677점 만점으로 듣기·문법·독해 부문에 대해서만 평가했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 10월 CBT가 도입되면서 PBT를 실시되지 않는다.
CBT(Computer-based TOEFL Test)는 응시자가 종이로 된 시험지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컴퓨터에 앉아 시험을 보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10월 도입됐다. 듣기·문법·독해 외에 쓰기(TWE: Test of Written English) 영역이 추가되고 300점 만점으로 변경됐다. TWE는 별도로 채점되며 6점 만점이다. 듣기와 문법 영역이 응시자의 수준에 따라 자동적으로 조절되는 것이 특징이다.
IBT(Internet-based TOEFL Test)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보는 시험이며 듣기·독해·말하기·쓰기 영역으로 테스트한다. 기존의 문법 영역이 사라지면서 말하기 영역이 추가되었고, 120점 만점으로 변경되었다. 2005년 9월 미국에서 최초로 선보였으며 단계적으로 전세계에 도입되고 있다.
8.토플 대란은 언제 끝날까요
토플 대란이 심해지자, 미국 ETS가 6월 3일 한국에서 PBT 시험을 특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일 약 8000명이 시험을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토플 대란은 수요와 공급이 절대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데서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에 따라 ETS가 획기적인 공급 대책을 내놓거나, 한국의 토플 시험 준비생들의 시험 수요가 크게 줄지 않는 한 토플 대란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