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였다. 안면만 있고 말을 해본 적은 없는 꼬마아이가 뜬금없이 “이쁜 누나 안녕”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날따라 화장 하지 않은 맨 얼굴에 긴 생머리, 빨간 재킷을 입은 내가 아이의 눈엔 어려 보인 모양이었다. 엉겁결에 나도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꼬마는 부끄러운 듯 발그레 웃었다.

집에 들어가 거울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유치원생에게 이모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고 누나라니. 시간이 갈수록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얻어 입은 기분이었다. 며칠 후 나는 미용실로 달려가 10년 넘게 고집해오던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구불구불 파마까지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일이냐고 심각하게 물었다. 내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봄이잖아요.”

어제 그 꼬마친구를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만났다, 아이는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똑딱똑딱, 혀를 굴려 시계소리만 냈다. ‘너 나 몰라? 이쁜 누나잖아’ 하는 의미로 눈짓을 계속 보냈지만 아이는 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가 내리는데도 아이는 안녕 아줌마, 란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변신 성공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도 같았다. 빙긋 웃음이 났다.

천지가 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 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어디 있을까. 낮은 바람에도, 꽃잎의 여린 몸짓에도 그리고 가볍게 스친 말 한마디, 무심한 눈빛에도 봄을 핑계 삼아 마냥 흔들리고 싶은 계절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