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모의논술 인문계열 1등 대진고 이재성군

지난 2월 치러진 2008학년도 대비 서울대 모의 논술고사의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인문계에서 101명, 자연계에서 97명이 응시한 이 시험에서 인문계열 1등은 서울 대진고 이재성(17)군이었다.

“시험시간 종료 1분 전에 겨우 답안 작성을 끝냈을 정도로 시간이 빠듯했어요.”

하지만 이군은 당황하지 않았다. “평소 독서를 바탕으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체계적으로 글 쓰는 연습에 공을 들여 왔기 때문”이란다. 이런 이군이 쓴 답안에 대해 채점 교수들은 “고등학교 2학년의 수준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이군의 논술비법을 한 꺼풀씩 벗겨봤다.

쉬운 책부터 읽었다

이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책 읽기라면 자신이 있었다. 선생님이 독후감 숙제를 내주면 제한 분량보다 훨씬 많이 써서 제출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독후감노트 10권을 채웠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논술이 대입에서 중요해지자 이군은 책 읽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장자, 자본론, 공산당 선언…. 모두 논술에 도움이 되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고전(古典)들이었다. 하지만 고1인 이군이 이해하기에는 내용이 워낙 난해했다. 게다가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라고 생각하니까 더 이상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좋아하던 책을 아예 손에서 놓아버리기까지 했다.

이군은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장승수씨가 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같은 다소 가벼운 내용의 책을 접한 뒤였습니다. ‘대학입시’라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분의 이야기가 용기를 주더군요. 독서가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한 친구들은 잠시 어려운 책이나 교과 공부에서 벗어나 이런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수준에 맞고 마음에 와 닿는 책을 읽자.’

이 때부터 이군은 이 원칙을 독서 생활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논술에 도움이 되는 권장도서’ 중에서도 조지 오웰의 ‘1984년’ 같이 재미있는 내용을 주로 읽고 있다. 시사 잡지도 한 가지를 정해 꾸준히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읽고 있다.

외우지 말고 이해하려 했다

본격적인 논술 준비는 고1 때부터 시작됐다. 이 시점부터 학교에서 논술수업을 받았다. 이군이 다닌 대진고에서는 1학년 상위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주 한 번, 1시간씩 논술 수업을 실시했다. 이군은 따로 한 달에 2번 학원도 다녔다.

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들을 때 이군은 절대 필기를 해서 외우지 않는다. 논술은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암기를 하면 오히려 후에 생각도 나지 않고 개념이 헷갈리기 때문이다. 특히 수업에서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일대일 첨삭시간이라고 이군은 강조했다. “자신의 약점은 ‘첨삭’이 아니면 평생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한번 지적 당한 부분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더니 글이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학원도 같은 방식으로 활용했다. 이군은 “학원에서 배경지식을 설명해주고 내가 쓴 글을 첨삭해 준 것이 역시 도움이 됐다”며 “답안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독서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전에서는 시간배분이 관건

서울대 모의논술 고사를 치러 본 이군은 “시간이 부족했다”는 말부터 꺼냈다. 제시문은 대부분 교과서에서 출제돼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으나 5000자를 4시간에 써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성삼문의 시에 나타난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대해 논하라’는 1번 문항에 대해서는 채점교수로부터 “잘 적은 답안”이라는 평을 받았다.

“처음엔 성삼문→사육신→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다가 죽음이라는 상식을 가지고 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에 ‘이 시에 나타난’이란 조건이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재적(內在的)’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죠. 후에 외재적(外在的)으로 분석해 쓴 학생이 많았다는 발표를 보고 논제 파악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이군은 문과지만 수학을 좋아한다. 그래서 모의논술에서도 사실상 수리논술이었던 3번 문항에서 가장 높은 96점을 받았다(1번 문항 95점, 2번 문항 65점, 4번 문항 85점). 3번 문항은 게임과 청소년 폭력의 연관성에 관해 ‘조건부확률 개념’을 적용하는 문제였다. 이군은 “수학 기호를 쓰지 못하고 말로 서술해야 했던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개화기 직전 조선과 오늘날 세계화 상황’을 비교하는 4번 문항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100% 활용했다. 사회탐구 영역 중 ‘국사, 근현대사, 세계사’ 등 ‘3사(史)’와 윤리를 공부해 왔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교과서의 근현대사 부분에서 제시문이 그대로 나와 더욱 익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4번 문항으로 넘어갔을 때 이군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40분. 1번 문항에 공을 너무 많이 들였던 탓이었다. 할 수 없이 30초 만에 개요를 짜고 곧장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군은 “많은 것을 알아도 시간이 없으면 헛일”이라며 “실전에서는 시간배분이 글 쓰기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대체 왜?… 비판적으로 생각하자

이군은 "평소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일상적인 습관들이 글 쓰는데 여러 모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군의 경우 어떤 현상을 보든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는 습관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상품의 가격이 갑자기 절반으로 뚝 떨어졌을 때 "정말 싸군. 당장 사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군은 좀 다르다. "대체 왜 이렇게 가격이 내려간 것일까?", "이렇게 싸게 팔 수 있는데 지금까지 비싸게 팔아왔단 말이야?"….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진다.

이군은 또 “투박한 표현이 플러스 요인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 화려한 글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맹이 없는 수사(修辭)는 오히려 감점이 될 수도 있다. ‘창의적인 생각을 학생다운 표현에 집어 넣는 것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논술의 금언(金言)’이 다시 한번 맞아 떨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