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가 말한 원형 감옥, 조지 오웰이 예견한 빅 브라더의 세계는 멀리 있지 않았다. 가게에 설치된 폐쇄회로 카메라는 인터넷을 통해 점주의 집 컴퓨터로 연결돼 있었다. 점주는 집에서도 얼마든지 컴퓨터를 통해 가게 상황을 체크할 수 있었고 실제로도 늘 그렇게 했다. 나는 ‘인간극장’류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는지 늘 의아하게 생각해왔는데 막상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보니 알 것 같았다. 감옥에 오래 있는 사람들은 간수들이 자기 편이라고 착각하게 된다고 했다.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니 마음도 가까이 있으리라 믿는 것이겠으나 간수들의 생각은 수감자들 생각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감시카메라도 마찬가지. 가까이 두고 오래 만난 게 친구라더니, 그 본질은 사라지고 때론 가까운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아마 집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점주와 눈이 마주쳤을 것이다.
“아, 네, 그게 말씀드리기가 좀 복잡한데요.”
“알았어. 내가 나갈 테니까 그때 얘기해.”
점주는 바로 나타났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남자가 맡기고 간 휴대폰과 명함을 보여주었다. 점주는 명함을 보더니 가게의 유선전화로 거기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더니 수화기를 내 귀에 대 줬다. 수화기에서는 “지금 거신 전화는 결번이오니 확인하시고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만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 휴대폰, 이 다 썩은 게 얼마나 할 것 같아?”
점주가 펼친 폴더식 휴대폰은 화면의 액정도 온전치 않은 것이었다.
“얼마 줬다고?”
“4만원 줬는데요.”
점주가 눈을 날카롭게 뜨고 달려들 듯이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댔다. 이마와 이마가 서로 부딪힐 지경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야, 이 한심한 놈아. 왜 남의 돈으로 니가 인심을 써? 쓰려면 니 돈으로 하란 말이야. 너 나이가 몇 살이야? 낼모레 서른인 새끼가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몰라?”
“그런데 왜 욕을 하세요?”
사장은 내 말투를 흉내 내며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뭐? 왜 욕을 하세요오오? 새벽부터 이런 일을 당하면 너 같으면 욕 안 나오겠냐? 아침부터 재수없게 이게 뭐야?”
“그건 죄송하게 됐습니다.”
“됐어. 죄송할 거 없어.”
“월급에서 까세요.”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야.”
점주는 50시간치의 급여를 보증금조로 잡아두고 있었다. 그건 편의점계의 관행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 다시 15시간 정도의 액수가 날아간 것이다. 그러니까 어제와 오늘, 이틀 밤을 헛수고한 셈이다. 나는 주인과 함께 말없이 결산을 했다. 결산에서도 8천 원 가량이 비었다. 아마도 복권 쪽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궁시렁궁시렁거리며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는 나라는 인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치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멍청하게 계산대 앞에 서 있어야만 했다. 점주가 마침내 고개를 들고 싸늘하게 말했다.
“뭐 해? 가 봐.”
나는 말투보다 나를 바라보는 점주의 그 눈빛에서 충격을 받았다. 만약 당신이 한 인간을 서서히 파멸시키고 싶다면 그런 눈빛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기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눈빛이며, 앞으로 그가 더 나은 존재가 될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 눈빛이며, 혹시 그런 존재가 되더라도 적어도 자신만큼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눈빛이다. 만약 그런 눈빛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있다면 그 삶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런 눈빛을 가진 교사 밑에서 배우는 아이라면 자신감이라는 감정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은 경멸과는 또 다른 것이다. 그것은 경멸에 들어가는 에너지조차 아까워하는, 얕은 수준의 감정이었다. 그것은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고,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고, 필요하면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을 때나 생겨나는 종류의 감정일 것이다.
내 마음 아주 깊숙한 곳에 살고 있는 영혼의 파수꾼이 출동했다. 그가 나를 대신하여 말하는 것을 나는 말릴 수 없었다. “저, 내일부터 못 나올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