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봄기운이 완연한 서울 우면산 자락 아래 예술의 전당에서는 작지만 큰 무대가 하나 열리고 있다. 배우들의 열정과 혼이 고스란이 담긴 무대다. 이름하여 ‘레즈 시스터즈’. 대학로에서 수많은 연극이 열리고 있지만 이곳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는 사랑과 슬픔, 그리고 삶과 고통에 대하여 외치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지난 80년대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90년대에는 일본에서 공연돼 히트한 바 있는 ‘레즈 시스터즈’의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배우들의 열정이 살아 무대를 울린다.

‘레즈 시스터즈’는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 답답하게 살아가는 7명 여인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꿈과 희망을 좇는 이야기다. 그들은 억눌린 현실 속에 갇혀 살아가면서도 끝까지 희망과 꿈을 잃지 않는다. 이같은 인디언 여성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남은 여인들의 강인한 삶을 보여주는 연극‘레즈 시스터즈’. 극단 레드볼 제공

우리들의 일상이 그렇듯 레즈 시스터즈의 자매들은 건강한 의식과 사고로 낡은 집을 고치고, 품질 좋은 양변기를 사고 싶고, 새 가스레인지를 갖고 싶어한다. 또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좋아하는 가수의 레코드를 사는 등 지극히 소박하다. 여기에 가능하다면 그 가수의 백코러스가 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한다. 뿐만 아니라 갈매기가 나는 푸른 해변의 섬을 사는 거창한 꿈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소한 일상의 꿈과 평생 이루어질 수 없는 꿈들이 있듯 레즈 시스터즈의 자매들도 그들이 이룰 수 있는 꿈인지 아닌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요즘의 대박(?)을 꿈꾸듯 세계 최대의 상금이 걸린 빙고대회에 참여한다. 결과는 현실처럼 일상으로 되돌아오지만 말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갈등하고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던 그들은 사랑과 행복과 평화가 일상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세계빙고대회에 참여하기 위한 비용마련을 위해 바자회를 열고 그들이 갖는 축제같은 무대는 1막이 끝날 즈음 ‘아모레미오’를 부르는 장면에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긴 여운의 감동은 인디언의 장례식으로 이어지고 노래를 부르던 여성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음과 잉태의 시퀀스는 배우들의 연기와 무대와 조명과 음악으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출연배우 7명이 모두 여성인 ‘레즈 시스터즈’ 무대는 때로 갈매기로, 인디언의 신인 ‘나나붓슈’로 변신하는 우리 시대의 뛰어난 배우 이호성 씨가 출연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무대를 생생하게 살아 있게 만든다. 그가 부르는 남저음 목청의 ‘아모레미오’를 들어보라. 그것은 감동 그 자체이자 하나의 축복이다.

일본에 진출한 배우 나자명의 첫 연출작인 ‘레즈 시스터즈’의 관람은 이 봄날에 환한 햇살처럼 우리를 눈부시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