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하얏트호텔. 시계(視界) 제로(0)였던 협상만큼이나 한·미 FTA 협상장에는 지독한 황사가 몰아쳤다. 지난 31일 오전 7시30분 초췌한 모습의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가 “48시간 협상연장”을 발표한 뒤, 피 말리는 협상은 시작됐다. 그러나 협상 마감시한으로 정한 2일 오전 1시가 가까워 오면서 속속 핵심 이견에서 의견 접근을 이뤘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14개월에 걸친 길고도 험난했던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일 저녁부터 분위기 급진전=협상단의 표정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1일 오전만 해도 비관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저녁부터 쇠고기를 비롯한 농업과 자동차 등 핵심쟁점에서 양측 이견이 좁혀지고 있다는 소식이 협상장 주변에 퍼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쟁점이었던 쇠고기와 자동차는 우리측의 요구조건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쇠고기는 우리가 문서로 수입을 확약해주는 대신, 한국 정부 당국자의 ‘공개 발언’을 통해 이를 대체하는 선에서 절충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 협상은 한국의 자동차 수입관세 8%는 즉시 철폐하고, 미국은 3000㏄ 미만은 즉시 철폐하는 대신 3000㏄ 이상은 3년 내 철폐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협상단 핵심 관계자는 "막판까지 버티면서 쇠고기 검역과 자동차 등의 현안에 대해 우리측의 의견이 많이 관철됐다"며 "수출되는 한국산 자동차는 3000㏄ 미만이 더 많아 우리측의 수출증대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끝내 못 얻어낸 부분도 있다. 미국은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이 원칙적으로 한국산임을 인정해주되, 실제로 미국이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시기는 향후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결국 추후 협상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지적 재산권 인정 기간도 현행 50년 인정에서 미국 요구대로 70년으로 늘리기로 접근점을 찾았다. 반 FTA측은 70년으로 늘어나면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저작권료를 더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그러나 2일 새벽까지도 협상이 언제 타결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협상장 주변에서는 "김종훈 대표가 '협상은 미국측의 진짜 마감시간인 2일 오후 1시(미국시각, 4월1일 밤 12시)까지도 갈 것'이라고 말했다"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재경부 고위관계자도 "협상은 새벽 5시는 돼야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1일 오후 9시30분부터 권오규 부총리 주재로 대외경제장관 회의가 개최됐다. 김종훈 한·미FTA 수석대표도 오후 7시45분쯤 협상장인 하얏트호텔을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돼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양측이 협상 마감시한으로 정한 2일 오전 1시 이전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와의 최종 담판에 들고 나갈 수 있는 협상카드를 마지막으로 조율한 것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이 회의는 마무리된 타결안에 대해 승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라며 "회의가 열린다고 타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협상 상황 함구령=1일까지만 해도 간간이 협상 상황을 브리핑해 주던 협상단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2일부터는 일제히 입을 닫았다.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은 "현재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청와대가 상황을 언급하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칫 잘못된 발언 한두 마디가 협상 전략을 노출시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0일 오후 8시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선(先) 타결, 후(後) 조문화'라는 미국측 제안을 우리가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뒤, 미국측이 '48시간 연장카드'를 압박용으로 꺼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윤 수석은 "타결 여부에 관계없이 2일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이 발표된다"고 말했다. 홍보수석실은 2일 있을 노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을, 타결됐을 경우와 결렬됐을 경우 두 가지로 나눠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