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외롭고 목마른 자여

미지의 땅을 처음 밟는 여행자의 눈에는, 그곳의 모든 것이 경이롭고 위대해 보인다. 오죽했으면 꿈꾸던 이태리를 여행한 괴테가 이렇게 말했을까. ‘이태리의 모든 것은 위대하다. 유곽마저도.’

남미대륙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브라질 사람들은 그만큼 스케일도 크다.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이런 여행자의 기를 죽이는 거대 조형물들이 유난히 많다. 국민의 80%가 가톨릭이어서일까. 성상이나 성당 건축은 조형적 다양함과 크기에서 상상을 초월한다. 코르코바도의 예수상 아래 섰을 때 까마득히 구름 위로 올려다 보이던 얼굴을 보며 그 크기에 놀랐던 나는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앞에 서서 다시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혀야만 했다. 100미터에 육박하는 높이의 위용도 대단했지만, 흔히 볼 수 없는 파격적 형식의 성당 내부에서도 나는 살짝 주눅이 들었다. 과연 사람들이 코르코바도의 예수상과 함께 리우의 상징이자 자랑으로 내세울 만했다.

십자가 형태의 천창에서 환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길게 드리워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영롱하게 빛난다. 아득히 높은 천장에서 드리워진 끈에 매달린 십자가 위의 예수상은 마치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의 인상을 준다. 외롭고 목마른 듯한.

실내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조용히 간구하며 기도하는 사람들과 관광객이 섞여있다. 카메라와 수첩을 든 관광객의 모습으로 성당으로 들어섰던 나는 그 불안정한 느낌의 십자가 고상 앞에 서자 갑자기 누적된 피로에 지친 연약한 여행자가 되어버린다. 이 힘든 여정을 지켜주기를 기도하며 촛불 하나를 밝혀 놓는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닮아 피라미드성당으로도 불리는 이 성당문을 나서는데 불경스럽게도 언젠가 읽은 짧은 글 하나가 떠오른다. 소설가 테스터튼이 쓴 세 줄짜리 소설이었던가.

‘…어느 날 대주교가 기도하러 텅 빈 성당에 갔다. 맨 앞자리에 앉아 습관대로 손을 모으고 하느님아버지, 하고 불렀다. 왜 그러느냐 내가 여기 있다, 하느님이 대답했다. 대주교는 심장마비로 숨졌다.’

▲가난한 산동네에도 축복처럼 달빛은 넘쳐난다.

#2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쓴 시

성당을 나와 주변의 거리를 둘러본다. 주위에는 이 성당만큼이나 튀는 건물들이 많다. 흡사 모더니즘 건축물의 박물관 같다. 비행접시 모양의 건물이 있는가 하면 기둥 하나로 지탱하는 32층 건물도 있다.

나는 이 태양의 도시에서 이토록 독특하고 다양한 건축물들을 만나게 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브라질은 건축 강국이다. 리우에서 태어나 100세인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스카 니마이어는 모더니즘 건축의 산증인이다. 르 코르뷔지에와 유엔본부를 공동 작업했던 그는 파리, 이태리, 알제리 등 세계 곳곳에 점을 찍듯 자신의 건축물을 남겼으며 여전히 도처에서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가 설계와 건설을 주도했던 계획 수도 브라질리아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입체적인 건축 교과서로 꼽힌다. 매우 유려하고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의 건축들은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쓰인 서사시라 부를 만하다.

스스로 코뮤니스트라고 말하는 그는, 세계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자신의 고향 리우의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한다. 공립학교를 설계하고 광장을 만들었으며 삼바페스티벌 거리를 만들었다.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는 이런 프로젝트들이 오히려 더 내밀한 기쁨을 주지 않았을까. 그는 늘 그렇게 말해왔다. 내게 중요한 것은 철근과 콘크리트의 건축이 아니라 삶과 친구, 그리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여성의 몸에서 늘 건축의 원형을 발견한다는 그는, 건축적 영감을 위해서인지 38세 연하의 비서와 최근에 결혼을 했다. 100세에 삶도 건축도 현재진행형이라니. 아무렴. 브라질의 태양 아래서는 열정이 본능이 되어버릴 테니까.

#3  삶과 건축의 사이

대학 시절, 신림동 쪽방 동네에서 혼자 살던 날이 있었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아침, 너무 환해서 눈을 떠보니 부엌 쪽 하늘이 바로 보였다. 지붕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망연자실해서 골목으로 나가봤더니 아주머니 하나가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총각, 지붕 찾수? 저기 개천에 떨어져 있던데. 그곳에 살 때는 그곳의 삶이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청춘의 기운 때문이었을까. 가슴 속 꿈의 푸르른 서슬 덕분이었을까. 가난의 모습은 어찌 이리 닮았는지 이곳의 빈민촌 파벨라를 바라보며,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시절을 떠올렸다.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하늘을 찌르는 대성당이 있는 이 도시에는 너무 가난하여 성모상 하나를 살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사는 판자촌도 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의 삶을 프리즘으로 하여 하느님을 해석한다. 극심한 빈곤상태에서 자라나는, 티 한 점 없는 이곳 아이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포퓰리즘과 해방신학의 태생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남미의 아픔과 고민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저, 저 산정의 예수상과 거대한 대성당이 이들의 삶을 위로해줄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