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마즈 귀니(Yilmaz Guney·1937~1984)만큼이나 특이한 경력의 영화감독을 찾아보기도 힘들 것이다. 198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욜’을 통해 터키 영화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그는 한때(1960년대 초) 1년에 2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터키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액션 스타이기도 했다. 귀니는 배우에서 감독으로 방향을 전환한 이후 터키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것으로 평가받는 걸작들을 내놓기도 했지만 군부와의 마찰로 인해 오랜 수감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감옥 안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상세한 촬영 지시가 담긴 노트를 작성하고, 이것들을 감옥 밖으로 몰래 반출해 동료들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해 영화를 찍도록 했는가 하면 심지어 촬영된 필름을 들여와 감옥 안에서 편집까지 해내며 영화를 완성함으로써 터키 영화사의 ‘전설’이 되었다.
귀니의 마지막 영화인 ‘벽’은 1981년 터키의 감옥을 탈출해 망명한 귀니가 프랑스에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를 완성한 직후 귀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을 학교로 쓰이던 파리 교외의 낡은 수도원은 비인간적인 처우가 만연한 터키의 감옥으로 바뀌었고, 독일 및 프랑스에서 살고 있던 100여명의 쿠르드족 아이들과 또 다른 10여명의 성인들이 연기자로 기용되었다. 감독 자신이 겪었던 수감생활의 경험과 뿌리를 상실한 쿠르드족으로서의 정체성―실제 쿠르드족 부모를 두었던 귀니는 자신을 ‘쿠르드족에 동화된 사람’으로 정의한 바 있다―이 깊이 각인된 이 작품에서 감옥은 당대의 억압적인 터키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신랄한 메타포로 활용되고 있다.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노골적이고 불편한 장면들도 때로 등장하는데 국내 방송윤리규정상 원본 그대로 고스란히 방영되기는 힘들 듯싶다. Le Mur. 1983년. 112분 ★★★☆ (5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