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아물어 갈 무렵인 1955년. 영국의 역사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C.Northcote Parkinson)은 이코노미스트지(誌)에 고발성 기고문을 보냈다. 전쟁 당시 영국 해군 장교로 근무했던 그는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영국 해군에 퍼져 있던 불합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컨대 1914년에서 1928년에 이르는 15년 동안 영국 해군의 함정 수는 64% 줄고 수병 숫자는 31% 줄었는데도 해군본부의 관리자 수는 오히려 78% 늘어났다.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의 식민지를 관리하는 식민성(植民省)에서도 똑같은 일이 생겼다. 당시 전 세계 영국 식민지가 독립되는 시기인데도 식민성 관리 숫자가 1661명으로 한창 식민지를 거느리던 1935년의 372명 보다 무려 5배나 늘어났다.

파킨슨의 결론은 간단했다. 공무원 조직은 업무량에 관계 없이 스스로 증대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출간한 책에서 몇 가지를 더 추가해 유명한 ‘파킨슨법칙’을 내놓았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공무원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일을 만들어낸다’ ‘공무원들은 세금이 걷힐 수 있는 한 계속해서 자리를 늘리려 한다’ ‘예산 심의에 필요한 시간은 예산액에 반비례한다’….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오늘 날 한국 땅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임기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지금 한국 사회의 어수선한 틈을 타고 공무원들의 자기 증식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50년 전 석학의 혜안(慧眼)에 감탄해야 하는지, 관료들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러야 하는지 헷갈릴 뿐이다.

예컨대 재정경제부는 최근 국고국에 국가채무관리과와 출자관리과를 신설하는 방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는 등 최근 3개월 사이 총 5개의 과(課)를 새로 만들거나 만들 계획을 내놓았다. 기획예산처는 기존에 2급 국장이 맡던 공공혁신본부장을 1급으로 승진시켰고, 밑에 2개국 4개과를 신설하는 방안을 결정했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관료들의 ‘자리 늘리기’ 열풍에는 공정거래위원회, 보건복지부, 외교통상부, 금융감독위원회, 산업자원부 등 정부의 웬만한 중앙 부처가 모두 발벗고 나섰다. 핑계는 다들 있다. ‘성공적인 FTA를 위해서’ ‘다가오는 고령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서’ ‘공공기관을 잘 관리·감독하기 위해서’ 등 다양하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까지 거들고 나서는 형편이다. 최근 일부 지자체들이 무능 공무원 퇴출제를 도입하자 노 대통령은 지난 22일 “작은 정부가 좋지만 공무원들을 내내 불안에 떨게 만드는 게 좋은 정부는 아니다. 그렇게 숫자에 연연해 하지 말자”며 공무원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 조직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서울대 김광웅 명예교수는 “정권 말기 관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대통령과 자리 늘리기에 혈안이 된 관료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국민들의 혈세(血稅)를 축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킨슨법칙’과 헷갈리기 쉬운 ‘파킨슨병(病)’이라는 것이 있다. 치매처럼 무서운 노인성 질환이다. 파킨슨법칙대로 운영되며 관료들이 조직 키우기에 혈세를 낭비하는 나라는 결국 ‘파킨슨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 최근 한 외신이 ‘한국은 너무 빨리 중년이 돼 버린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한 것을 보면 이미 한국이 파킨슨 딜레마에 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