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존 F 케네디 상원의원이 자기 요트로 재클린 부비에를 초대했다. 두 사람은 막 연애를 시작한 참이었다. 재클린은 둘만의 낭만적인 여행에 가슴 부풀어 요트에 올랐다. 기대는 곧 깨졌다. 요트엔 ‘라이프’ 잡지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와 있었다. 케네디가 부른 기자들이었다. 라이프는 ‘케네디 열애 중’이라는 제목으로 요트 위 두 연인의 사진을 표지에 실어 특종을 낚았다.

▶1970년 마오쩌둥(毛澤東)이 라이프 기자 에드거 스노를 베이징으로 불러 인터뷰를 가졌다. 스노는 1930년대 중국 공산당을 생생히 그린 책 ‘중국의 붉은 별’을 썼다. 마오는 스노에게 “닉슨이 중국에 온다면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미·중 수교 의사를 전한 것이다. 그때까지 닉슨은 마오의 속뜻을 몰라 폴란드, 파키스탄 같은 제3국 정보망까지 동원하고 있었다. 2년 뒤 닉슨은 역사적 중국 방문에 나섰다.

▶1996년 스포츠용품 회사 나이키가 발칵 뒤집혔다. 라이프가 파키스탄에서 찍은 12세 사내아이의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아이는 맨땅 위 흰 천에 웅크리고 앉아 나이키 마크가 찍힌 축구공을 꿰매고 있었다. 다국적회사들의 어린이 노동착취가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익이 30%나 급락한 나이키는 사과했고 근로조건 자체 감시시스템을 만들었다.

▶라이프는 72년까지 주간으로 발행되다 영상시대에 밀려 특집판, 월간으로 명맥을 이었다. 미디어그룹 타임이 2004년부터 60개 신문 일요판 부록으로 공급해 오던 라이프를 다음달 20일 폐간한다고 발표했다. “잡지산업이 경쟁력을 잃었고 광고 전망도 안 좋아서”라고 했다. 1936년 타임그룹 창립자 헨리 루스가 창간한 지 71년 만이다. 빨간 네모 바탕에 흰 ‘LIFE’ 제호는 한 유머잡지가 쓰던 것을 루스가 샀다. 그는 50년대까지 “사진 한 장이 모든 걸 말해 줄 수 있다”며 사진만으로 라이프를 채웠다. 글은 몇 줄 사진설명뿐이었다.

▶라이프는 포토저널리즘의 꽃이었다. 스탈린에서 히틀러, 메릴린 먼로까지 역사적 명사들이 표지에 올랐다. 카파가 찍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아이젠스타트가 잡은 수병과 간호사의 뉴욕거리 키스처럼 세계를 감동시킨 사진도 헤아릴 수 없다. 라이프는 가난한 시절 우리에게도 바깥세상을 내다보게 하는 창(窓)이었다. 라이프 끼고 다니는 게 지식인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었다. 라이프의 푸근한 아날로그 기억들을 매끈한 디지털 동영상은 결코 대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