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미국 시카고의 한 호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일하던 김성진(53) 박사와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이 만났다. 이 회장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백지수표였다. “원하시는 연구조건은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세계적인 암·당뇨 연구를 우리나라에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박사는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 논문만 192편을 발표한 암 성장 억제 단백질 연구 분야의 권위자였다. NIH에서 종신 연구직까지 보장받은 상태였다.

두 사람의 만남이 있은 지 1년4개월여가 흐른 26일 인천 송도테크노 파크에서 4750평 규모의 가천의과학대 ‘이길여 암·당뇨연구소’ 착공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함께 첫 삽을 들었다. 김 박사가 ‘이길여 암·당뇨연구소’ 소장을 맡은 것이다.

이 회장은 김 박사에게 종신 연구원 자리를 보장하고, 미국 수준의 연구 지원을 약속했다. 또 연구원 스카우트 전권을 위임함으로써 김 박사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이후 김 소장은 외국에서 19명, 국내에서 5명 등 총 24명의 암·당뇨 전문가를 스카우트했다. 신생 연구소의 모든 연구원을 학연·지연 없이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미국 시카고 프랭클린의대 전희숙(당뇨 연구) 교수, 하버드대 김영범(비만 전문) 교수, 플로리다주립대 오석(유전성 출혈 연구) 교수, 미국 예일대 최철수(당뇨 전문) 교수 등 암·당뇨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들이 연구원으로 대거 합류했다. 일본 쓰쿠바대 마무라 미즈코 교수 등 일본인 2명도 포함됐다.

연구원 7명은 2억원 이상 연봉 계약을 했고, 부서장급 이상은 아파트까지 지원했다. 이미 연구비만 수십억원을 확보했다. 연구실과 실험실도 연구원들이 원하는 대로 설계됐다.

대표적인 것이 쥐 대사기능 형질연구센터다. 쥐 유전자를 변형했을 때 원하던 효과는 물론 부작용 여부까지 검토할 수 있는 이 센터를 갖고 있는 곳은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힌다.

이 센터를 짓는 데만 100억원 이상이 든다.

이 회장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했다. “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인 교수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와 그들이 가진 기술을 진짜 우리 것으로 만들려면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외국인 교수도 추가로 데려올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