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은 남구 무거동 신 삼호교에서부터 하류 명촌교쪽으로 강남과 강북 양쪽에 왕복 4차선의 강변도로가 뻗어있다. 도로 주변 경치가 일품이다. 최근 강변 곳곳에 주상복합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어 경관 파괴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태화강변에 도로가 처음 개통된 것은 1971년 8월 20일이다. 이 최초의 강변도로는 중구 성남동 울산교에서 태화교 부근까지 왕복 2차선으로 준공되었다. 그 후 1999년 4월 20일에 학성교에서 명촌교까지 강북 제방을 겸한 도로가 완전 개통되면서 지금과 같은 강변풍경이 갖추어졌다. 크게 변모된 현재의 모습에서 과거의 태화강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지만 자동차가 달리기 전의 태화강 강둑을 잠깐 기억해 보자.

1963년 여름 태화강 강북쪽 강둑 모습. 홍수로 강둑 너머 오른쪽 성남동 일대가 물에 잠겼다. 사진작가 이백호씨 제공.

필자가 기억하는 1960년대의 태화강은 끝없이 긴 푸른 강둑이 아스라이 뻗어있는 모습이다. 성남동 육갑문 부근 고수부지에는 키 큰 포플러가 한 줄 서 있었다. 학성공원 건너편 삼산배수장 부근 고수부지에는 좌우 대각선을 맞추어 열 지어 선 넓은 포플러 숲이 두 곳이나 있었다. 중구 쪽 강둑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동쪽 삼산동에서 서쪽 신정동 일대와 남산까지 드넓은 전원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당시와 같은 강변 풍경이 만들어진 것은 ‘울산수리조합’이 “홍수에 안전한 농경지를 확보하겠다”며 태화강에 인공제방을 만든 1932년 이후다. 지금으로 쳐도 75년 전으로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울산수리조합은 지금은 시가지가 된 중구, 남구, 북구 일대 들판 약 400만평을 개발했는데, 이 과정에서 태화강 남북 제방이 모두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공사 이후 중구 구시가지는 상습 침수에 시달리게 됐으니 아이러니다. 태화강변에 인공제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퇴적된 모래가 자연제방역할을 했지만 홍수라도 나면 성남동 시계탑 네거리쯤에 있었던 울산읍성의 남문인 ‘강해루(江海樓)’ 앞까지 강물이 밀려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