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 2004년 4월1일 한국의 첫 자유무역협정(FTA) 발효국이 된 뒤, 칠레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왔다. 우리는 값싸고 질 좋은 칠레산 와인과 삼겹살을 즐겨 먹고, 칠레에선 한국산 휴대전화가 돌풍을 일으켰다. 한편에서는 원자재 수입이 늘면서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농가 피해도 있었다. 한·칠레 FTA 3년은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나.

“칠레산은 삼겹살의 ‘아르마니’(이탈리아 패션 브랜드)예요. ‘칠레산’이라고 찍혀 있으면 식당에서 그냥 믿고 사요.”(무역회사 ‘아라통상’ 박성준 고문)

칠레산 돼지고기가 1만8000㎞를 건너와 한국인의 식탁에서 고급품 대접을 받는다. FTA가 가져다 준 생활 속의 변화 중 하나다. 칠레산 삼겹살의 인기 비결은 맛이 국산에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칠레의 기후가 한국과 비슷해 삼겹살의 살코기와 지방 비율이 토종돼지와 유사하다. 덕분에 FTA가 체결돼 관세가 낮아졌는데도(2003년26.2%→올해 16.7%), 칠레산 삼겹살은 수입산 중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그래도 국내산보다는 10%정도 싸다.

칠레산 돼지고기 수입은 FTA 발효 후 2배 이상 늘었다(2003년 2300만달러→작년 5430만달러). 수입검역 기준으로 한국 돼지고기 시장의 약 10%를 칠레산이 차지할 정도다.

◆'와인 포차'도 생겨=요즘 떡볶이 안주에 와인을 파는 실내 와인포차(포장마차)가 젊은 층 사이에 인기다. 서울 홍대 근처에서는 와인포차 거리도 생겼다. 병당 1만~4만원대의 저가 와인을 갖춰놓고, 안주도 일반 호프집에서 볼 수 있는 것들로 구색을 맞췄다. 와인포차가 있도록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칠레산 와인이다. 한·칠레FTA 이후 싼 칠레산 와인이 국내시장을 석권(시장점유율 17%)하면서 비싸게 수입되던 프랑스·이탈리아 와인값까지 끌어내렸다.

칠레산 와인의 수입관세는 15%에서 지금은 5%로 내려갔으며, 2009년 0%로 내려가면 가격은 더 떨어질 전망이다.

◆칠레산 홍어·포도의 활약=SC제일은행 김풍호 차장은 칠레산 홍어의 톡 쏘는 맛에 푹 빠졌다. 목이 칼칼하면 회사 근처 홍어 음식점을 찾아 막걸리 한 잔과 함께 목을 푼다. 김 차장은 “처음부터 국내산은 못 먹어봤어요. 국산은 한 접시 5만~7만원은 하거든요. 칠레산도 3만원은 하지만 그래도 싸잖아요”라고 했다.

국산 홍어는 갈수록 귀해지고 있다. 이 틈새를 칠레산 홍어가 메우고 있다. 홍어판매 회사 ㈜영광홍어의 김동연 사장은 “알래스카산도 있고, 포클랜드산도 있지만 우리 입맛에는 칠레산 홍어가 가장 잘 맞는다”고 말했다. 칠레의 홍어 어획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가격이 크게 뛰지 않는 것은 한·칠레 FTA로 35%에 이르던 수입관세가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포도가 나지 않는 봄철인데도 오히려 포도값이 내려가고 있다. 칠레산 포도가 공급과잉이 되면서 수입업자들이 손해를 보면서 포도를 시장에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마트 등 대형할인점에서 파는 칠레산 포도값은 100g에 340원 정도에 불과하다.

◆1만여 농가 폐업=우리 농가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FTA 피해농가 폐업지원금으로 책정된 2600억원 중 1445억원이 포도·키위·복숭아 폐업농가 1만1300여곳에 지급됐다. 폐업은 복숭아 9900농가, 포도 1100농가, 키위 300농가 순이었다.

정부는 2003~2005년 포도와 키위 재배면적은 30% 이상 늘고 가격은 10% 이상 상승했다는 점을 들어 농가 피해는 적다고 밝히고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당초 과수농가 피해만 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던 FTA 반대측 주장은 과장된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농민단체 간부는 “1만가구나 폐업을 해 공급이 줄어들어 가격이 오른 것을 갖고 농민 피해가 없다면 말이 안된다”고 반박했다. 이 간부는 “농촌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과수·축산농가의 국내 판매 감소액도 400억원이 넘는데, 정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통계에서 빼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