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영문도 모른 채 북한에 끌려갔을 생각을 하면, 또 평양에 있는 (누나의 아들) 가브리엘 드레스녹(Gabriel Dresnok)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는 분명히 우리의 소중한 가족이니까요."

1970년대 말 북한에 의해 납치됐다가 1997년 사망한 도이나 붐베아(Doina Bumbea·납치 당시 27세)의 막내 동생 가브리엘 붐베아(40)는 22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내내 붉어진 눈시울을 훔쳤다. 목소리는 잠겼다. 그는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서쪽으로 230km 가량 떨어진 인구 25만명의 크라이오바에 살고 있다.

그는 주한미군으로 월북했었던 찰스 로버트 젠킨스(Jenkins)씨의 자서전이 1년 반 전 나왔을 때 처음 누나의 행방을 확인했다. 한 친지가 그 책에 "루마니아에서 온 여성의 이름이 도이나"라는 구절이 나온다는 것을 알려줬던 것.

이어, 납치된 누나가 주한미군 출신 월북자 제임스 드레스녹(Dresnok·66)과 사이에 낳은 가브리엘 드레스녹이 등장하는 영국의 다큐멘터리 '사선을 넘어(Cross the Line)'를 지난달말 인터넷을 통해 봤다.

▲도이나의 막내동생인 가브리엘 붐베아가 22일 크라이오바(루마니아)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모니터에 뜬 누나의 생전 사진을 가리키며 누나의 납치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본 순간, 그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조카 가브리엘이 누나 도이나를 쏙 빼닮았다. 컴퓨터를 켜고 그 안에 보관된 옛날 누나 사진을 찾아내 가브리엘 사진과 비교해보니 영락없는 혈육이었다.

컴퓨터 수리점을 하는 가브리엘은 기자에게 여러 장의 사진을 꺼내 보였다. "보세요. 눈매와 코, 얼굴이 너무 똑같잖아요. 그리스 정교 신자였던 누나 도이나는 생전에 저를 무척이나 예뻐했어요. 아마 그래서 자기 아들에게 저와 똑같은 이름을 세례명으로 준 것 같아요."

가브리엘이 기억하는 누나 도이나는 조각과 회화에 능했던 '천사표'였다. 늘 두 남동생의 버팀목이 돼 줬다. 1970년 이탈리아인 여행가 비안콘니(Bianconni)와 결혼한 뒤로는 어머니와 두 동생까지 챙겨주는 가장 (家長) 역할도 했다고 한다.

"납치되기 직전인 1978년 10월 누나가 전화를 했어요. '일본에 화랑을 개설하면 우리 가족이 생계를 위해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누나 도이나는 당시 이탈리아 로마에서 미술 공부를 하다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됐다.

▲북한에 납치됐던 도이나 붐베아가 여섯살이던 1956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한 공원에서 찍은 가족사진. 군무원이었던 아버지 페트레가 장녀 도이나와 장남 미르체아를 안고 있다.

가브리엘은 누나가 북한에 납치된 것에 대해 "정치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북한에 있는 조카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것을 걱정해서였다. 그는 대신 조카 가브리엘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루마니아 정부에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저와 가족들의 소망은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평양에 살고 있는 조카를 한번만이라도 봤으면 하는 거죠. 조카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루마니아의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한 달 전부터 몇 번이나 루마니아 정부에 가브리엘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아직까지 반응이 없어요."

루마니아 정부를 다시 설득할까 하고 한 달 가량 고민하던 그는 결국 평양주재 루마니아 대사관 영사과에 직접 편지를 쓰기로 했다. A4 용지 2장 분량을 써서 20일 이메일로 대사관측에 보냈다.

가브리엘은 북한측에는 조카와의 상봉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이 저의 평양 방문을 허가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인도적인 문제니까 북한측이 좀 더 유연하게 나오길 바랄뿐이죠. 제3국 같은 중립지대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그의 눈의 다시 젖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