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문화재청으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제목은 ‘개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입니다’였다. “개헌은 나라의 미래를 위한 일이며, 올해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내용이었다. 희한한 일도 다 있다 싶어 내막을 알아봤다.
국정홍보처는 지난 3월 7일 문화재청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문화재청으로부터 메일을 받아보는 ‘정책 고객’에게 개헌의 당위성을 홍보하는 메일을 보내라”라는 내용이었다. 협조라기보단 ‘지시’에 가까웠다. 국정홍보처는 홍보 문안과 디자인까지 만들어 주었다. 문화재청은 홍보 문안을 받은 19일부터 자구 하나 고치지 않고 이메일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정책고객’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문화재청에서 왜 이런 메일을 보냈느냐’, ‘아침부터 이메일 열어보고 기분이 나빴다’…. 20일 오후 3시30분 현재 4만5000명에게 이메일이 들어갔는데, 이 중 2000여명이 메일을 열어 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30여 통의 답장이 왔는데, 모두 비판 일색이었다.
국정홍보처의 개헌 홍보 협조 공문을 받은 다른 부처도 사정은 비슷했다. 문화재청의 한 관리는 “다른 부의 분위기가 궁금해 물어 보았더니 역시 항의 메일이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며 “어느 부처에서는 부처장에게 항의 전화가 와서 난리가 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전 부처를 동원해 개헌 홍보에 나선 것은 오는 4월 초 개헌안이 발의되면 현행 국민투표법상 국민투표 안(案)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관보 등에 게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가 다음 정부에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개헌인데, 무엇이 그리 절박했던 것일까. 국방부나 문화관광부, 여성가족부, 심지어 문화재청까지도 개헌 홍보에 동원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한심하다 못해 딱하다. “답장을 보낸 분 중에는 기분 나쁘다며 회원 탈퇴 요청을 하신 분도 있습니다. 우리야 문화유산을 국민에게 잘 알리는 것이 부처의 존립 이유인데….” 문화재청 관료의 탄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