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전의 일이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의 민사 법정 원고석에 모 은행 지점장이 앉았다. 대출을 갚지 않은 고객들에게 소송을 제기한 이 지점장은 양복 정장 위에 코트를 입고 있었다.

사건 번호와 이름을 불러 당사자를 확인한 재판장은 이 지점장의 옷차림을 보고는 다짜고짜 “아니, 재판 하루 이틀 나오나? 어디 건방지게 외투를 걸치고 나와?”라고 소리쳤다. 놀란 지점장은 후다닥 코트를 벗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법정에서는 외투를 벗는 것이 예의로 통하지만, 법으로 강제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이런 장면이 연출되자 법정은 찬물을 끼얹은 듯 냉기가 흘렀다. 여러 대출 건에 대한 심리가 끝난 뒤 지점장은 재판장에게 허리를 구부려 절을 한 뒤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어 다음 차례 사건의 당사자로 나온 60대 남성의 옷차림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모였다. 당사자석에 선 이 남성은 ‘내복’만 입고 있었다. 재판장이 “옷이 그게 뭐요?”라고 묻자, 이 남성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복 위에 바로 점퍼를 입고 와서요”라고 답했다.

외투를 벗다 보니 내복만 남은 것이다. 법조계에서 유명한 ‘내복 사건’이다.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법원장과 111명의 민사(民事)담당 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구술심리(口述審理) 강화를 위한 민사재판장 전체 워크숍’에서 이 사건이 ‘고쳐야 할 사례’로 거론됐다. ‘변호사가 본 바람직한 재판진행의 모습’이라는 주제발표를 한 강용현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내복 사건을 예로 들면서, “(판사는) 법정 질서를 유지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고압적 자세를 보여 분위기가 경직되면 (당사자들과) 의사소통이 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주 광운대 교수는 “판사도 공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재판장이 재판진행을 위해 당사자의 말을 끊어야 할 때는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라고 말하면 법정 분위기가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철규 판사는 당사자 간 합의를 유도하는 ‘조정(調停)’을 잘하는 법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판사실에서 조정을 할 때 당사자들에게 차를 권하며 “차 한 잔 마셨으니 찻값 내는 셈 치고 서로 양보하면 어떻습니까”라고 권유했더니, 당사자들이 웃으면서 양보했다고 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은 형사부 판사 워크숍을 통해 ‘전관예우(前官禮遇)’ 등 법조계의 병폐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으로 판사와 사건 관련 변호사의 전화 접촉까지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법원은 “변호사들이 판사실을 방문할 때는 방문대장을 기록하는 등 통제가 있지만, 전화 연락 때는 지침이 없어 사건관련 변호사의 전화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은 또 ‘들쭉날쭉’ 논란을 빚어온 양형(量刑)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각 재판부가 선고하는 형량 요인을 입력해 다른 재판부가 참고하는 ‘양형 자료 프로그램’을 공유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