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 타임스 북리뷰(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의 베스트셀러 순위표는 문명(文名)을 떨치는 스타 작가들의 각축장이다. 지난해 9월 마지막 주, 독자들은 이 순위표 정상에서 생소한 이름을 발견했다. 작가의 이름은 다이안 세터필드(Dia ne Setterfield·42). 생애 첫 소설인 ‘열세 번째 이야기(The Thirteenth Tale)’를 출간 3주 만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리며, 일약 세계가 주목하는 이야기꾼 반열에 오른 영국의 신예 소설가다. 프레드릭 포사이드와 제임스 패터슨, 마크 해든 같은 유명 작가들의 이름이 모두 그녀의 발치 아래서 만족해야 했다.
영국 북부 황무지를 배경으로 앤젤필드가(家)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그린 이 소설은 애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을 연상케 하는 으스스한 고딕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베스트셀러 작가 비다 윈터.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전기작가인 마거릿 리를 초대한다. 비다는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될 이 구술(口述)을 ‘이야기의 위대함’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2005년 12월 런던 소설 경매시장에서 80만 파운드(약 14억7000만원)란 거액에 세터필드의 첫 소설을 사들였던 오리온출판사 제인 우드 편집장은 “이야기의 힘을 증명하는 마술 같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이달 말 열리는 영국 도서상(British Book Awards)의 신인상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그녀를 영국 북부 도시 해로게이트에서 만났다.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당신 소설의 주인공인 비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전기작가 마거릿의 직업을 “고리타분하다”고 비난한다. 우리 삶에서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는 뜻인가.
“비다 윈터는 소설가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그녀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하는 방법으로 사실을 나열하는 대신 유령 이야기를 꾸며내도록 했다. ‘사실’이란 것은 무의미할 때가 많으며, 의미를 담아 이야기로 꾸며놓을 때 삶의 진실이 보인다는 믿음을 담고 싶었다.”
―‘제인 에어’와 ‘셜록 홈즈’ 같은 작품이 이 소설 속에 언급되는 것도 흥미롭다. 다른 작품들을 이 소설에 등장시킨 이유는.
“책을 통해 우리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정말 책을 좋아했다. 어릴 적 치과에 다닐 때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서점이 옆에 있는 치과를 고를 정도였다. 치료 끝나고 서점에서 책 고를 생각이 내 마음의 두려움을 마취시켰으니까.”
―당신의 박사학위 논문은 ‘인간을 쓰게(write)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앙드레 지드의 초기 작품들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본능에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동물들과 달리 인간의 호기심은 무언가를 상상하게 하며 거기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신이 인기를 얻는 데는 신문 서평보다 인터넷 블로거들의 활약이 컸다. 그들은 당신 소설을 네티즌들에게 권했다. 소설 내용은 19세기 영국 고딕소설인데, 전파 방식은 매우 첨단적이다.
“독서는 매우 개인적인 체험이다. 내 소설의 성공은 인터넷이 그런 체험을 공유하기 좋은 공간임을 보여줬다. 블로거들은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도 이야기를 원하는 성향은 바뀌지 않는다’는 확신도 내게 주었다. 작가라면 영화나 인터넷의 확산을 두려워할 시간에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당신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반면, 평단에서는 주목 받지 못했다. 비교 대상도 댄 브라운이나 시드니 셸던이었다. 당신의 문학성이 저평가됐다고 생각하는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대중성과 문학성의 이분법적 잣대는 점점 의미를 잃고 있다. 나는 작가로서 이야기(스토리 텔링)를 잘 하고 싶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문체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을 뿐이다.”
'열세 번째 이야기'는
아버지와 함께 고서점을 운영하며 전기작가로도 활동 중인 마거릿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날아든다. 편지를 쓴 사람은 당대 최고의 소설가 비다 윈터. 그녀는 마거릿에게 "내 전기를 집필해 달라"고 요청한다.
마거릿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나의 직업"이라며 "있는 그대로를 말하라"고 한다. 그러나 비다는 거절한다. "오싹한 두려움이 침대 위에서 당신을 얼어붙게 만들 때, …앙상한 뼈다귀 같은 진실이 당신을 구하러 달려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겠지요. 그럴 때 필요한 것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이야기의 위안이지요. …지어낸 이야기는 부서진 사실 한 조각보다 항상 더 눈부시니까요."
마거릿은 비다가 들려주는 유령 이야기를 듣는다. 어리둥절한 이야기들이지만 질문을 해서도 안되고, 뒤에 일어날 일을 먼저 알려고 해도 안 된다. 마치 소설을 읽듯이 마거릿은 비다의 이야기를 듣는다. 소설이 끝나고 비다가 숨을 거둘 무렵, 그녀를 둘러싼 충격적인 비밀이 벗겨진다. 국내에도 최근 번역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