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기자단이 이곳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 도착한 것은 10일 밤 2시.

새벽 5시가 되자 백악관은 눈을 비비는 100여명의 기자들을 버스에 태우고 세 시간 동안 시골길을 달렸다. 도착한 곳은 미국과 우루과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리는 안초레나(Anchorena) 별장이었다. 광활한 전원 속에 묻힌, 일종의 우루과이식 캠프데이비드(미국 대통령 별장)였다.

이곳에서 두 대통령은 바비큐를 구워 점심을 하고 옆 플라타강(江)에서 보트를 타며 하루를 보냈다. 좀처럼 표정을 나타내지 않는 콘돌리자 라이스(Rice) 국무장관은 야외 기자회견장에서 생글생글 웃었다. 긴장감 넘치던 전날의 브라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우루과이는 인구 330만명의 작은 해변가 나라. 하지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타바레 바스케스(Vazquez) 대통령은 남미에서 반미(反美) 바람에 동조하지 않고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좌파지도자다.

“몇 년 전 우리가 사상 최대의 경제위기를 겪었을 때 도움의 손을 내밀어 준 주인공이 미국과 부시 대통령이었습니다.” 바스케스의 감사에 부시는 감동을 받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30분간의 기자회견에서 주거니 받거니, ‘우정’이란 단어를 대여섯 번씩 썼다.

우루과이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이웃나라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제혼란 여파로 한국의 IMF사태와 똑같은 악몽을 겪었다. 이때 15억 달러의 긴급 자금을 빌려줘 경제회생의 발판을 만들어준 나라가 미국이었다. 우루과이의 최대 수출품인 쇠고기의 미국수출 금지조치도 즉각 해제해 줬다.

덕분에 우루과이의 경제는 되살아나 2003~04년에는 기록적인 12%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만큼 우루과이의 생존은 미국시장과 직결돼 있다. 바스케스는 지난달 미국과 무역투자협정을 맺었다.

그의 내각에는 과거 무장게릴라 출신도 섞여 있지만 국가운영은 철저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유무역, 법치주의를 따른다. 그의 집권(2005년 3월) 이후 우루과이는 ‘남미에서 유일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작년 말 영국 이코노미스트)로 평가받았다.

기자와 동행하는 스페인 최대일간지 ‘엘파이스’의 백악관 출입기자는, 우루과이는 양 옆의 절대적 영향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자국의 최대 무역시장인 미국, 남미 좌파이념의 선봉인 우고 차베스(Chavez)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자’ 역할을 추구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랍의 대표적 반미방송인 알자지라의 백악관 출입 와지드 와크피(Waqfi) 기자는 그런 바스케스를 “실용주의적 중도좌파”라면서 “바스케스는 대단히 현명한 처신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차베스가 전날 밤 부시의 우루과이 도착에 맞춰 플라타 강 건너 맞은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맞불집회를 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3만명이 모였다는 이곳에서 차베스는 “그(부시)는 우리를 분열시켜려는, 양의 가죽을 쓴 늑대” “위선자” “제국주의의 우두머리”라고 비난했다.

부시와 차베스는 지금 우루과이를 두고 ‘구애(求愛)경쟁’을 벌이는 형국(시사주간지 타임)이다. 베네수엘라로부터 막대한 석유 선심(善心)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바스케스는 차베스식 이념에 휩쓸리기는 거부하고 있다.

대신 이 좌파 이념가는 국익 최우선의 냉정한 현실주의자의 길을 가고 있다. “내 눈은 유토피아에 있지만 내 발은 지상을 딛고 있다”고 그는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은 65%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