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서 6일과 7일 열린 힐(Hill) 미 국무부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간의 미·북 회담 파장은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회담 후 양측 모두 만족을 표시하면서 수교까지 거론하는 상황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왜 이런 일이 생겼고,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김영삼 정부의 대통령외교안보수석을 역임한 정종욱(鄭鍾旭)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와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시대위원장을 지낸 문정인(文正仁) 외교부 국제안보대사의 대담을 통해 알아봤다.

■ "결정하면 못 하는게 없다는 생각"

정종욱=엄청난 변화다. 김 부상의 방미 결과를 보면 북미 관계가 빠르게 진전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과 미국이 깊숙한 논의를 한 것 같다. 북핵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질서가 예상보다 빨리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문정인=김 부상도 그렇지만 미국의 태도에 놀랐다. “결정만 하면 못 하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과거(2002년) 조명록 북한 인민군 차수와 올브라이트(Albright) 당시 국무장관의 워싱턴, 평양 교차방문 이후 가장 혁신적인 것 같다. 북한도 그 동안 핑계를 대면서 판을 깨려고 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 "국제압력이 북한 끌어내"

정=북한측도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먼저 꺼내는 등 호기(好機)라고 본 듯하다. 작년 10월 핵실험 이후 중국 등의 국제적 압력이 북한으로 하여금 기회의 창을 만들게 한 것으로 보인다.

문=부시 대통령 2기 들어 성공한 외교정책이 하나도 없다. 아프간 문제를 성공했다고 보고 나토로 옮겼는데 나토도 무너지고 있다. 이라크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패다. 이제 부시가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업적을 찾게 된 것이다. 잃어버린 4년에 대한 인식이 있었을 것이다.

■"일단 플루토늄 확산 막을 수 있어"

정=김정일 위원장이 핵 포기라는 결단을 내렸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60일 시한이 지나봐야 한다. 김정일이 과연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난 아직까지는 물음표를 붙이겠다. 이번 합의에서 북한이 폐쇄하기로 한 시설들은 이미 상당히 용도가 충족된 것들이다. 그냥 없애도 부담되지 않는 시설들이다. 중요한 것은 10기 정도 있다는 핵무기인데, 이건 북한이 감추면 찾기 힘들다. 미·북 간 어려운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문=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영변의 5메가와트 흑연감속로와 방사화학실험실 모두 용도 폐기된 것들이 아니다. 핵탄두 10개를 북한이 가졌다는 것 자체가 바로 이것들이 아직도 가동되기 때문이다. 영변 시설을 폐기하면 미래의 플루토늄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아직 불안하고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하는 가정에서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60일 이내 폐쇄, 핵 사찰관의 검증, 모든 핵 프로그램 신고 등에서 북한이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 한다.

■"부시 임기 내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

정=북미 수교와 관련, 이번에 실무적 논의가 있었던 것 같다. 테러지원국 제외,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등의 문제에서 말이다. 미국도 국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국교 정상화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진전을 보인다면 부시 행정부가 2년 남은 상황에서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 없다.

문=정상회담 얘긴데, 그것은 조건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게 아니다. 북한이 얼마나 하느냐다. 만약에 북한이 리비아처럼 속성으로 문제를 푼다면 민주당이 지배하는 미 의회도 국교 수교를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북한이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8~9년이 걸릴 수 있다. 2년 남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부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송민순 외교장관의 아이디어로 6자 외교장관회담이 열리게 돼 있는데 이게 잘되면 6개국 정상회담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정=난 6개국 정상회담보다는 오히려 양자간 정상회담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연 북한이 리비아처럼 화끈하게 문제를 해결할지는 의문이다.

■"미·북 관계개선 땐 北군부 발언권 약화"

정=북한이 핵무기와 HEU를 신고하는 단계에서 군부 세력이 동의하느냐도 문제다. 이는 미국 내 강경파의 퇴조와 맞물려 있다. 미국 내 강경파 목소리가 작아질 것이냐도 관심사다. 북한이 새로운 공세를 하지 않는 한 다시 미국 여론이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김정일이 군부 실세를 대동하고 주 북한 중국 대사관을 방문했는데, 과연 군부가 따라올 것인지는 판단이 어렵다.

문=현재 부시 대통령-라이스 국무-힐 차관보 라인은 견고하다. 부시 행정부 내에선 처음이다.

북한은 국방위원회 중심이다. 최고 기관이다. 이유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 때문이다. 북한은 그 동안 이를 국가 위기 상황으로 봐왔다. 북한 군부가 힘이 세진 것은 미국 강경정책 때문이다. 그런데 관계가 개선된다면 군부 발언권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테러지원 대상국에서 빠진다면 북한에선 당과 내각이 중심이 될 것이다.

■"현 정부 평화 틀만 잡아도 돼"

정=2·13 합의의 단계적 접근은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단계마다 문제가 생기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도 있다. 워킹그룹 등에서 협력을 통해 균형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뭘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면 안 된다. 남북정상회담을 밀어붙인다고 될 것도 아니다. 투명하게 대북정책을 해야 한다.

문=핵문제는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액션을 취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이제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미국의 실용주의 외교가 나타나고 있다. 이게 중요하다. 지금 나온 것만이라도 잘 해야 한다.

현 정부는 남북관계를 치우침 없이 유지하고, 차기 정부에서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단 평화 외교를 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약속은 지켜진 것이다. 내년 2월까지 그대로 간다면 북한 핵에 대한 현 정부의 정책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평화 틀만 잡혀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