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분당 정자동 아름방송 건물 1층 방송국 스튜디오를 가로질러 구석에 자리한 '성남·광주·하남 범죄피해자지원센터(본부장 박조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범죄피해자 지원센터는 당신 곁에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 넓지 않은 한쪽 벽면을 차지한 책장엔 200권이 넘는 상담 자료철이 빼곡하다. 반갑게 기자를 맞는 강기원(55) 사무국장. 그는 지난 2005년 1월 개소한 이후 이곳에서 각종 범죄 피해자들의 상담·지원, 형사조정(화해중재)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말 그대로 사기·가정폭력·성폭력·채권채무·살인·강도·아파트 분쟁 등 각종 범죄 피해에 노출된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피해를 줄이고 예방할 수 있는지를 상담해주고 있습니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지난 2005년 12월 23일 범죄피해자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전국 55개 지검·지청을 중심으로 각각 설립됐다. 강 사무국장은 성남, 하남, 광주 지역을 관할하는 센터에서 일주일에 평균 15~20건(전화·방문) 상담을 도맡는다.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대처할 수 있는 무료 법률 상담에서부터 인생상담까지가 그의 몫이다. 길어지면 한사람에 3~4시간도 훌쩍 넘기고, 주말에도 24시간 상담 대기는 물론이다. 상담시기를 놓쳐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피해자들을 볼 때면 ‘조금만 일찍 찾아왔더라면…’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그가 작년 한 해 동안 상담한 건수는 1120건. 개소 2년 만에 전국에서 세번째로 많은 수치다. 특별히 법무나 상담 쪽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그가 어떻게 이 일을 맡게 됐을까.
다양한 그의 경력이 바탕이 됐다. 육군 3사 7기로 임관해 1996년까지 26년간 군에 몸 담았다가 중령으로 예편했다. 이후 그가 거주하는 분당에서 아파트입주자대표로 일하며 '아파트 관리비 절감' '옥상문 개방 소방법 개정 요구' '고속도로 지체때 통행료 환불 요구' '아파트 명칭 변경' 등 주민들의 권리를 찾는 운동을 주도해왔다. "왜? 보기에 부당하니까. 부당한 법, 제도를 그냥 따를 수 만은 없잖아요." 이 덕분에 '아파트 관리박사'로도 불린 강 사무국장은 중국 길림성 송원시 경제고문, 국회의원 보좌관 등을 거치며 받은 표창장만 십수개. 군에서 배운 군법과 법무법인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공부한 법률 지식, 10년 전부터 모아온 각종 탄원서, 법률 자료 등 200여개의 서류철 등이 상담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범죄피해에 지친 이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적인 상담'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번은 가정폭력을 당해 온 아주머니에게 밥을 사 먹이는 데 게눈 감추듯 세 그릇을 뚝딱 비우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호주머니를 뒤져 3만원을 얼른 쥐어줬어요." 빠듯한 예산 탓에 금전적 지원은 크게 못하고 있지만, 사정이 딱한 피해자들을 만날 때는 가슴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는 "상담하다 보면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해온 15세 여학생, 백과사전 할인판매에 속아 12년간 채권통지에 시달려온 가족 등 기가 막힌 사연이 많다"며 "다른 사람들도 이런 피해 사례들을 알아야 제3의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 2년간 상담했던 사례를 묶어 '범죄를 알면 예방이 보인다'는 책을 펴냈다. 270페이지 분량의 책 속에는 폭행, 성폭행, 혼인빙자, 사기, 가정문제, 채권채무 관련 범죄 등 실제 사례와 이에 대한 도움말, 상담을 이용하는 방법, 형사사건 처리절차, 즉결심판 절차, 고소에 관한 법률 상식, 범죄피해자지원센터 활동상황 등이 차례로 담겨 있다. 책은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성남, 광주, 하남 지역 관공서, 학교 등에 무료로 배포된다. '이제 시작'이라는 강 사무국장은 "범죄피해자나 가족을 돕기 위한 예산을 확립해 피해자들을 다양하게 도울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112, 119 전화번호 처럼 범죄피해자 상담 전화창구를 하나로 통일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031)715-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