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스위스 제네바발(發) 소식이다. 유엔(UN)의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인도를 인종차별 국가로 지정하려 했다. 42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 처음은 아니다.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인도에는 지금도 인종(아리아인과 드라비다인) 차별에서 시작된 신분제도 ‘카스트(Caste)’가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도 측 대표인 바한바티(Vahanvati)는 인도 국부(國父)인 마하트마 간디(Gandih)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에 항거한 점과 인도 헌법이 공식적으로 카스트를 인정하지 않음을 근거로 강력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도에 사는 외국인이란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UN의 움직임이 결코 지나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글로벌 3강(强)’을 외치는 인도의 농촌에선 아직도 총 인구의 15%나 되는 최하층 카스트인 불가촉천민들이 특정 길거리에 다니지도 못하고, 공동 우물도 사용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마하트마 간디조차 “인도인들은 스스로 남아프리카에서 쿨리(苦力·힘든 일을 하는 사람)라는 굴욕적인 말을 듣고 분개하면서 왜 자기 동포를 ‘불가촉천민’이라며 멸시하는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을까. 인도 경제지 파이낸셜 익스프레스의 아는 기자에게 물어봤더니 “카스트는 제도라기보다 문화”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인종차별, 인간차별이 분명한 카스트를 두고 문화라고 말하는 인도인이, 올 초 불거진 ‘실파 셰티(Shetty) 논란’에서 보여준 태도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파는 타밀나두주(州) 출신으로 17세에 데뷔, 15년 동안 볼리우드(Bollywood·인도영화산업)의 정상급을 지키고 있는 인도 최고 영화배우다. 그런 그가 영국의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인도인 특유의 영어 발음과 이름 때문에 세 명의 백인 여성으로부터 “개” “너는 오두막에 사니” 등의 인종차별적인 말을 듣고 울먹였다. 당장 인도 전체가 흥분했다. 민족주의가 강한 인도의 비하르주(州) 파트나에선 2만여 명이 거리에 쏟아져 ‘인종 차별 반대’를 부르짖었다. 결국 영국은 토니 블레어 총리와 차기 총리로 유력한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까지 나서 “인종차별에 반대한다”고 사과를 했다.
그런데 인종차별의 피해 당사자인 실파 또한 카스트로는 상층계급인 바이샤와 크샤트리아의 중간급이다. 그 역시 인종차별의 카스트에선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물론 영국 방송 프로그램이 엄청난 잘못을 한 것은 틀림없다. 다만 자기끼리 신분제도를 두는 것은 문화이고, 남이 자기를 비하(卑下)하면 인종차별이란 인도식(式) 접근엔 ‘자기모순’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는 이런 자기모순들을 하나둘씩 풀어야만 진정한 세계 강대국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도의 모순을 지적하는 논리를 우리 모습에 투영해 보면 어떤가. 움찔해지는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많은 갈등은 자기 잘못은 외면한 채 남의 허물만을 강조하는 ‘자기 모순’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심지어 설득의 의무를 지닌 지도자마저 나서 ‘대화가 안 된다’며 상대방을 호통친다. 대화가 안 될 때는 자기부터 돌아보는 게 순리다. 일이 꼬일 때도 마찬가지다. 편을 가르고 ‘네 탓’만 해선 자기모순에 점점 더 빠져들 뿐이다. 자기모순 극복은 진보(進步)의 첫 수순이다.
▲3월5일자 A38면 특파원칼럼 중 ‘인도 국부 마하트마 간디’의 ‘국부(國富)’는 ‘국부(國父)’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