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7개월 만에 이뤄진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적십자회담·경제협력추진위원회 일자 등 6개항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8·15까지 적어도 9차례 이상의 남북 당국 간 공식 접촉이 이뤄지게 됐다. 하지만 공동보도문에는 이번 회담의 핵심 문제인 쌀·비료 대북지원 부분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지 않아 이면합의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이번 합의를 전문가에게 물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2일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에 대해 "과거 합의 내용을 종합했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우리측은 북한 미사일 발사 이전 상태로의 복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그것도 불충분하게 이뤄졌다"며 "특히 경의선과 동해선 시험운행, 군사당국 간 회담 날짜를 잡지 못한 것은 한계"라고 했다.
그는 북측이 애초 입장을 바꿔 경제협력추진위원회 4월 개최에 합의한 배경과 관련, "쌀·비료 중 우선 급한 비료를 택한 것"이라며 "북한의 경우 쌀은 군량미를 잠시 풀어서라도 버틸 수 있지만 비료는 재고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철도 연결·경공업 지원 문제 등도 회담 일정 외에는 구체적인 합의가 없다"며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봄철 비료 지원 정도만 구체적"이라고 했다.
정 실장은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8·15공동행사까지 총 9개 일정에 합의하는 등 남북대화가 이어지게 한 것은 성과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평양 6·15공동행사에 당국이 참여하기로 한 만큼 이를 이용해 대북 특사를 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일 나온 남북장관급회담 공동보도문에는 대북 쌀·비료 지원 얘기가 전혀 없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이날 처음에는 "북한이 양을 제시해 이런 수준이면 되겠다고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이 식량 40만t, 비료 30만t"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 말을 2~3차례나 반복하고 기자회견을 마쳤다. 그러나 양창석 공보관 설명을 듣고 5분쯤 후에 돌아와 "그건 북한이 요구한 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년에 식량 40만~50만t, 비료는 30만~40만t을 북한에 지원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는데, 북한이 예년 수준의 최저치를 요구했다는 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남주홍 교수는 "쌀·비료 지원 시기와 양에 대해 이면합의를 해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별도 약속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종결회의 때 북측 권호웅 단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남북 올림픽 축구팀 얘기를 꺼냈겠느냐는 것이다.
남 교수는 북한이 예년과 달리 국가보안법을 올 상반기 내에 폐지하라고 구체적인 시점까지 요구했는데 이 장관이 이에 대한 구두 약속을 해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도 했다.
북한문제 전문가인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이번 장관급회담 합의의 배경에 대해 "북한이 2·13 합의에 따라 60일 이내에 이행하기로 한 의무를 하겠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북한은 애초 3월 경제협력추진위원회 개최를 주장했지만 최종 합의문에서 우리측 입장을 수용했다"며 "4월 13일까지 하기로 한 영변 핵원자로 시설 폐쇄에 대한 이행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북한도 이미 2·13 합의라는 큰 틀, 특히 미·북관계의 진전상황과 남북문제를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자칫 이번에 남쪽 정부의 체면을 구기거나 하면 미·북 합의 등에서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합의의 모양새를 갖춘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영변 핵시설과 핵무기를 분리해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 같다"며 "영변 핵시설의 폐쇄나 일정 정도의 불능화까지는 미국과 큰 틀의 합의가 이미 이뤄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고 교수는 "당분간 남북관계가 6자회담 진행 상황 보다 크게 앞서 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