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홍자(86·서울 양천구 신월동) 할머니는 옷장에서 베개를 꺼냈다. 낡고 손때 묻은 하늘색의 네모난 베개였다. 베갯잇 지퍼를 열자 검은 비닐봉지가 나왔다. 봉지 안에는 1만원 지폐 500장이 담겨 있었다. 종이끈으로 깔끔하게 100장씩 묶여 있었다. 할머니는 조용히 말했다. “10년간 모은 돈인데…, 이것 받아주겠소?”

지난 13일 오전 11시쯤 반지하 셋방에서 할머니는 이웃돕기 기금을 받으러 온 대한적십자사 직원에게 돈을 건넸다.

할머니는 이 500만원을 폐지를 팔아 모았다. 10년간 거의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동네를 돌았다. 낡은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그 안에 폐지를 주워 담았다. 폐지가 가득 쌓인 유모차를 힘겹게 끌고 동네 고물상에 가면 1000원을 받았다. 운 좋은 날은 양은 냄비나 고철도 주웠는데, 이런 날은 5000원도 벌었다. 그렇게 모은 돈을 할머니는 옷장 속 깊숙이 숨겨놓은 베개 속에 차곡차곡 모아 놓았다. “여기에 넣어둬야 도둑 맞지 않을 것 아닌가….” 은행이 집에서 5분 거리였지만 걸어가다 누가 채갈까봐 겁이 났다.

1000원 지폐 10장이 모이면 어김없이 동네 수퍼에 가서 깨끗한 1만원권으로 바꿔 넣었다.

“아, 남 주는 돈인데…, 깨끗해야지.” 할머니가 단정하게 빗은 머리를 손으로 쓸며 말했다.

차 할머니는 그만 20대 초반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채소 행상도 하고 남의 집 식모 일하며 딸을 키웠다. “다방에서 커피도 날라봤지….” 옥탑방과 지하 셋방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들었다. 이렇게 키운 딸은 이제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혼자 남은 할머니는 한 봉사단체에서 보내주는 쌀과 반찬으로 생활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매달 30만원씩 생활보조금도 받을 수 있었다. “배곯지 않고 지내는 게 어딘가 싶더라고. 늙은 몸, 죽기 전 이 은혜 갚고 죽고 싶어서….” 할머니는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을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적십자사는 할머니 이름을 딴 기금을 만들어 혼자 사는 노인과 결식 아동들을 위한 도시락사업에 쓰기로 했다. “세상에 진 빚을 갚은 기분이야.” 할머니의 눈이 맑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