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15일 오후 8시30분쯤 서울 대방동 서울공업고등학교. 겨울방학 중인데다 늦은 시간이어서 교정은 인적 없이 조용했다. 그러나 기계학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기계동 건물의 1층과 3층, 전기동 3층, 중기(重機)동 2층과 3층의 교실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기계동 1층. 선반 실습실에서 이호빈(17·정밀기계과 1년)군이 선반을 돌리며 뭔가를 열심히 깎고 있다. “나사 지름이 100분의 1㎜ 오차 범위 내로 들어가도록 정밀하게 가공하는 기술을 연습 중이에요.”

건너편 밀링 실습실에는 3명의 학생이 기계부품에 ‘T자’형 홈을 만드느라 밀링기계와 씨름하고 있었다. 3층 시스템자동화과 실습실에는 8명의 학생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짜서 설치한 시스템을 시험 가동하고 있었다.

▲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5일 밤 서울공업고 정밀기계과 학생들이 학교 실습실에서 담당교사와 함께 지방기능경기대회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공고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각 교사들에게 전화로 일일이 확인해보니 서울 한양공고, 수원공고, 부산기계공고, 경북기계공고의 실습실도 모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지도 교사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학생들은 오전 8시부터 나와 기술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실습실의 밤을 밝히고 있는 주역들은 오는 4월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할 학생들이다. 경북기계공고 실과부장 김종구 교사는 "예년에는 야간연습 때 기능반 학생들의 출석률이 85% 정도였는데, 올해는 매일 100%일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고 말했다. 수원공고 이주환 실과부장은 "밤 11시까지 남아서 연습하는 독한 학생들도 많다"고 했다.

매년 열리는 기능경기대회이지만 올해는 열기가 유별나다. 지난 9일 마감한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 등 7개 대도시의 가(假)집계 결과 3075명이 대회 참가를 신청했다. 2004년 이후 내리 3년째 계속 참가자가 줄면서 작년에는 2900명대로 떨어졌으나 올해 다시 증가세로 반전하며 3000명을 훌쩍 넘겼다.

"작년 연말 삼성전자가 전국기능대회 입상자 전원을 채용하겠다고 노동부와 협약을 맺은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서도 지난해 기능대회 입상자를 많이 뽑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생들이 의욕을 보이고 있습니다."(고광정 서울공고 실과부장 교사)

실제로 실업계고 졸업생이 대기업에 취업하기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에 비유될 만큼 힘들다. 실업계 명문고로 꼽히는 A공고의 지난해 전체 졸업생 중 대기업에 취업한 학생은 6명. 그나마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기능대회 입상자를 대거 뽑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계기능올림픽 입상자마저 산업현장에서 외면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대 기능올림픽 입상자 424명 중 지난해 기준으로 1년 이상 동종 업종에 종사한 사람은 336명에 그쳤다. 나머지는 전혀 엉뚱한 일에 종사하거나 실업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삼성전자·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대기업의 기능대회 입상자 채용 우대 방침이 실업계고 학생들을 들뜨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공고 전형국(17·시스템자동화과 1년)군은 "기술을 닦는 것에 인생의 승부를 걸어도 되겠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수한 기술·기능 인력이 산업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려면 2~3개 대기업 차원이 아닌 보다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승직 인하대 교수는 "기업은 우수한 기능 인력을 숙련된 전문가로 키우는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고, 정부는 실업교육을 산업현장과 연계시켜 산업인력 양성이라는 본질에 맞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