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지원이 물었다.
“인간이 동물하고 다른 점이 뭐라고 생각해?”
“글쎄.”
흥미로운 생각을 할 때면 지원의 가는 콧마루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그 주름이 나는 좋았다.
“강의행동이래.”
“뭔 행동?”
“강의행동. 오직 인간만이 누군가가 혼자 떠드는 걸 오래 참고 들어준다는 거야.”
“아하.”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과연 어떤 동물이 인간처럼 얌전히 앉아 남의 말을 경청한단 말인가. 그녀는 또 물었다.
“이민수, 넌 지성이 뭐라고 생각해?”
“지적인 능력 아닐까? 사물의 원리를 이해하는….”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근데 내 생각엔 말이야. 지성은 상대방의 속임수를 알아차리는 능력인 것 같아. 침팬지도 다른 녀석에게 거짓말을 하잖아. 먹이가 있는 데를 숨기려고. 그럴 때, 그걸 알아차리는 능력이 필요하겠지. 그게 바로 지성의 기원이야. 잘 생각해 봐. 우리가 하루종일 사용하는 지성의 대부분이 어디에 쓰일 것 같아? 사물의 원리? 그건 매뉴얼 몇 장 보면 다 알게 돼 있어. 나머지는 다른 인간의 속임수를 알아차리는 데 쓰는 거야. 옛날 학교 다닐 때 교장 선생님들이 늘 그러잖아. 학교의 주인은 바로 학생 여러분이라고. 사장님들도 회사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 사원들이라고 떠들어대지만, 흥, 지금 장난하냐?"
"광고도 그렇겠네."
"그렇지. 광고야말로 대단한 속임수지. 지성은 그런 데 속지 말라고 있는 거야. 지성이 부족한 자들이 계속 도태되는 것, 그래서 전체 인류의 지성이 계속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진화의 과정이야."
그날 지원은 모처럼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옛날 우리 반에 문학교과서를 집어던지면서, 이렇게 골 때리는 소설이 먹고 사는 거하고 뭔 관계가 있느냐고 따지는 애들이 있었어. 그래서 내가 그랬지. 문학을 모르면 니들은 평생 다른 사람의 교묘한 말에 속고 살 거다. 누가 이 세계를 지배하지? 누가 세상의 룰을 만들지? 바로 말을 잘 하는 놈들이야. 문학이란 게 뭐야? 말의 속임수를 다루는 거야. 작가란 족속들은 마치 교훈을 주는 척하면서 독자를 타락시키고 독자를 타락시키는 척 하면서 교훈을 주는 자들이라고. 이 얼마나 간특해? 평생 말로 남을 속이는 재능을 갈고 닦아온 전문가들이라니! 그러니 생각을 해봐. 소설에 속지 않는 사람이 되면 말이야. 웬만한 말의 술수에는 놀아나지 않게 된단 말씀이야."
"일리가 있네."
지원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인간은 말이야. 남의 지성을 시험하면서 동시에 시험을 받는 존재야. 자, 그런 인간의 운명을 가장 간단하게 압축한 게 뭐겠어?"
이번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바로 퀴즈야. 퀴즈가 뭐야? 묻고 답하는 거야. 답을 맞히면 더 어려운 질문이 기다리고 있지. 입사시험 같은 중요한 시험의 마지막 관문은 언제나 질문과 대답으로 돼 있어. 면접이라는 이름의 퀴즈라고. 의미심장하지 않아? 왜 점프볼이나 팔씨름이 아닌 퀴즈로 사람을 뽑을까? 오래된 전설마다 퀴즈가 등장하는 게 정말 우연일까? 스핑크스도 오이디푸스에게 퀴즈를 내잖아. 아침엔 다리가 넷, 낮엔 둘, 저녁엔 셋인 것은? 좀 더 어려운 퀴즈는 창세기에 나와. 카인이 질투 때문에 동생 아벨을 죽이니까 하느님이 물어.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카인의 답이 절묘해.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카인은 퀴즈에는 퀴즈로 대응을 한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신은 답 대신 벌을 내리지. 왜냐하면 신은 대답 같은 건 하지 않거든. 내 생각에 카인이 벌을 받은 것은 동생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감히 신에게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야."
지원에 의하면 퀴즈는 한낱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라 인류의 진화과정이 압축되어 있는, 살아 있는 화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