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와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 교수를 비롯한 한·일 경제사학자들이 2001년 ‘맛질의 농민들’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조선 후기와 일제 초기 농촌의 물가와 경제생활을 세밀하게 분석한 역작이었습니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경북 예천군 대저리 박씨가에서 1834년부터 1949년까지 115년간 4대에 걸쳐 쓴 일기 덕분입니다. 책 이름에 나온 ‘맛질’은 대저리를 현지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입니다.
맛질의 박씨 집안에서 일기 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박득녕이라는 분입니다. 1834년부터 조정에서 배포한 달력 위에 초서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답니다. 날씨는 물론 작황, 가계 수지, 손님 접대, 길흉사, 고을의 사건에 시장 소문까지 적었습니다. 1841년부터는 가계 수입과 지출을 기록한 ‘가계출납부’를 따로 썼습니다. ‘가계부 쓰는 남자’였던 셈이지요. 연구자들은 이 자료를 통해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박씨가의 연간 화폐수입, 구입한 물건의 종류와 수량, 가격, 거래방식에 이자율까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조선 경제가 자생적으로 자본주의로 이행하고 있었다는 ‘자본주의맹아론’을 반박하는 데이터를 얻은 거지요.
‘호서(湖西)의 몹시 큰 대추에서 씨를 바른 다음 설탕을 채우고 금을 바른다. 요새 음식사치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오늘 머릿 기사로 소개하는 책 ‘선비답게 산다는 것’에도 문인 유만주(兪晩柱)의 일기가 나옵니다. 유만주는 스물 한살이던 1775년 정월 초하루부터 서른 넷에 죽을 때까지 13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습니다. ‘집주름’(부동산업자)을 데리고 한양의 집을 보러다닌 얘기도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어떤 사료에도 나오지 않는 18세기의 일상을 구석구석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기록문화를 가진 우리 나라가 언제부터 ‘기록없는 사회’로 전락했는지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