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지역 바깥 왼쪽, 골문에서 약 20m 지점. 지난해 독일 월드컵 토고전처럼 박지성이 넘어지며 프리킥을 얻어내자 이천수가 공부터 잡았다.
‘이건 내 거야.’ 최근 영국 위건 진출이 좌절돼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던 것과 달리 얼굴엔 차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했다. 달려가는 방향과 슈팅 각도를 그리며 두 번 차는 시늉을 한 이천수는 제자리에서 도움닫기를 한 뒤 달려들며 슛을 날렸다. 공은 예리하게 3명의 수비벽을 넘어 골문 왼쪽 상단으로 날아가, 1m99의 장신 골키퍼 할키아스의 손을 스치며 네트를 흔들었다.
7일 그리스전에서 터진 이천수의 ‘거침없는 프리킥’.
독일월드컵 토고전에 이어 이천수의 프리킥이 또 한 번 팬들과 외국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국내 웹사이트에는 ‘강추, 놓칠 수 없는 장면’이란 부제와 함께 이천수 프리킥 동영상이 헤아릴 수 없이 떠있다. 로이터통신은 “각도가 거의 없는 곳에서(from the tightest angles) 놀라운 프리킥을 성공시켰다”고 평가했다. 강신우 대한축구협회 기술국장은 “슈팅의 난도로 따지면 그리스전 프리킥에 토고전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천수는 프리킥 예찬론자다. 울산 현대 김정남 감독은 “이천수는 페널티킥보다 프리킥 정확성이 높다고 우길 정도로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팀 훈련 때는 10번 차면 7~8차례를 성공시킬 정도라고 한다. 부평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를 벽에 세워 놓고 프리킥 차는 연습을 했던 이천수는 2004년 자신의 ‘프리킥 철학’을 말한 적이 있다. “2002월드컵을 경험하니까 강팀들을 이기려면 프리킥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때부터 프리킥 훈련의 비중을 높이고, 발목 근육을 강화하는 트레이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천수는 프로축구에서 2005년 10월부터 11월까지 4골을 프리킥으로만 넣은 적이 있다. K리그 통산 29골 가운데 프리킥 득점은 7골. 국가대표로는 9골(69경기 출전) 가운데 최근 4년간 3골을 프리킥으로 넣었다.
프리킥 성공은 슈팅 자세와 임팩트 능력, 골키퍼와의 심리싸움에서 갈린다. 회전을 많이 주면 휘어지는 각도는 커지지만 스피드는 줄어든다. 프리킥의 마술사로 통하는 선수들의 프리킥 구질은 다양하다.
최고의 슈팅 기술을 자랑하는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은 공에 회전을 많이 줘 큰 각도와 낙차로 승부를 거는 스타일. 지네딘 지단(프랑스)은 회전은 적지만 빠른 스피드로 골키퍼를 꼼짝 못하게 한다. 호베르투 카를루스(브라질)는 엄청난 슈팅 파워와 스피드로 종잡을 수 없는 변화구를 구사해 ‘UFO 프리킥’이란 찬사를 얻기도 했다. 최근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가 구사하는 무회전 프리킥이 관심을 끌고 있다. 공에 회전을 주지 않아 강력하면서도 야구의 너클볼처럼 갑자기 방향이 변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천수의 프리킥은 세계 유명 선수들 가운데 지단의 구질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축구대표팀에선 25m 이상 중장거리 프리킥은 ‘빨랫줄’처럼 직구로 날아가며, 김진규가 주로 찬다. 박주영과 김두현도 프리킥의 스피드와 정확성에서 국내 정상권으로 꼽힌다.